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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의 향기

봄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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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11-20 05:16 조회8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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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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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녀도 봄을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의 구름 따라다녔네.

허탕치고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

봄은 이미
매화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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盡日尋春不見春
진일심춘불견춘

芒鞋遍踏朧頭雲
망혜편답롱두운

歸來偶過梅花下
귀래우과매화하

春在枝頭已十分
춘재지두이십분


- 송(宋)니승(尼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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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막 지나면
사람들은 봄, 봄, 봄 한다.
성미가 급해서가 아니다.
봄은 희망이자 꿈이다.

그래서 봄이 오면
자신의 인생이 무엇인가
좀 달라질 것 같은 희망이 용솟음친다.

산이나 냇가에 자꾸 눈이 간다.
논밭이나 들판에도 마음이 간다.
정원에 심어진 나무에도 저절로 끌린다.

희망과 꿈과 생기와 성장과
사랑과 기대감이 넘치고 있는
봄을 그리는 것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봄을 찾아 나섰다.
그 사람은 곧 모든 사람이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으로 찾아다닌다.
저 멀리 구름이 걸린 언덕배기와
넓은 들판에까지 돌고 돌았다.
그러나 봄은 볼 수 없었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 왔다.
우연히 뜰에 심어진
매화나무 밑을 지나다가
진한 매화향기를 맡았다.

고개를 들어
매화나무 가지를 올려다보니
새하얀 매화꽃이 막 피기 시작하였다.

종일토록 찾아도
찾지 못하던 봄을 집에
돌아와서 한껏 느꼈다.

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한 걸음도 옮기지 않은
자기가 늘 살고 있는
자신의 집안에 있었다.


의미가 깊은 시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봄을 찾듯이 행복을 찾아 헤맨다.

재화(財貨)나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다.

사람을 맞이하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고
자식을 두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다.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달리는 것도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출가수행도 행복을 위해서고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성불(成佛)이나,
지극한 도(至道)나 열반이나
이 모두가 가장 이상적이며
바람직한 삶,
즉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그 진정한 행복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많이 소비해서
얻는 것도 아니며,

노력을 많이 해야만
얻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성불이나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
불교에서는 소위 말하는
팔만사천 방편을 시설해 두고 있다.

염불이나 간경이나 참선이나 주문이나
6도 만행 같은 일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수행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만
그 곳에 이르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한 것들은
어디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니고
다만 그러한 삶일 뿐이다.

실은 영가 스님이 증도가에서 말했듯이
깨달으면 그것으로 다 끝이다.

공(功)을 들일 필요가 없다.
[刻卽了不施功].

열반경에서는
소를 잡던 백정이
그 자리에서 칼을 내동댕이치며,
“나도 부처다.” 라고 하였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순간 보고 듣고
숨 쉬고 느끼고 하는 이 사실이다.

이것이 삶의 모든 것이며
인생의 모든 가치와 의미가 다 담겨 있다.

성불도 열반도 행복도
지금 바로 이 순간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항용 지금에 존재하지 않는,
언제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허상(虛相)에다 초점을 맞춰두고
그것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확실한 실상(實相)은 늘 외면한다.


사람들이
집안에 있는 봄을 모르고
멀리 찾아 헤매듯이,

행복이라는 봄도
성불이라는 봄도
열반이라는 봄도
여기 이 순간의 자신을 버리고
다른 곳을 찾아 헤맨다.

봄에 대한 이 시는
곧 이 문제를 깨우치는 글이다.


이 시는 송나라 때
어떤 비구니스님의
오도송이라고 전해질뿐
정확한 이름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또 송나라 때 인물인
대익(戴益), 자는 여해(汝該)며
호는 봉지(鳳池)라는 사람의 작품
탐춘(탐춘)에서도 같은 뜻이 보인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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