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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의 향기

콧구멍 없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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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12-10 05:20 조회7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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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구멍 없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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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콧구멍이 없다고
하는 말을 홀연히 듣고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인 줄 몰록 깨달았네.

유월의
연암산 아래 길에서

야인들이 하릴없이
태평가를 부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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忽聞人語無鼻孔 頓覺三千是吾家
홀문인어무비공 돈각삼천시오가

六月燕岩山下路 野人無事泰平歌
유월연암산하로 야인무사태평가


- 경허 성우(鏡虛惺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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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경허(鏡虛, 1849~1912)
스님의 오도송이다.

한국불교에서는
경허 스님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불교뿐만 아니고
식자층에서는 다 아는 고승이다.

그만큼 근대 한국의 불교,
한국의 선문화(禪文化)에
끼친 영향은 크기 때문이다.

5백여 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 동안
배불정책(排佛政策)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라와 고려를 내려오면서
그 화려하던 불교가
거의 절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희대의 고승 경허 스님이 나타나서
선불교를 중흥시킨 것이다.

만공(滿空) 스님, 혜월(慧月) 스님,
수월(水月) 스님, 용성(龍城) 스님,
한암(漢巖) 스님, 혜봉(慧峰) 스님,
침운(枕雲) 스님들이
모두 근세의 한국불교의 기둥들이었는데
그들이 역시 다
경허 스님의 법제자이거나
경허 스님에게서 수학하여
눈을 뜬 이들이기 때문이다.


스님의 속성은 송(宋)씨이며 전주 출신이다.
9세에 청계사(淸溪寺)로 출가하여
계허(桂虛) 스님 밑에서 5년을 보냈다.
1862년(철종 13)에
마을의 박처사(朴處士)라는 선비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기초 불교경론을 배웠다.

다시 계룡산 동학사의
만화(萬化) 스님에게서
불교경론을 배우면서
제자백가를 섭렵하였다.

만화 스님은
경허 스님에게 법을 전한 전법사이다.
그리고
1871년 23세에
동학사의 강사가 되었다.


1879년
옛 스승 계허 스님을 찾아가던 중
천안 인근에서 폭우를 만났으나,
마침 돌림병의 유행으로
인가에 유숙할 수 없어
빗속에서 나무 아래에 앉아 밤을 새다가
생사의 일이 크고 무서움을 깨달았다.

그 길로 동학사로 돌아와
학인들을 해산시킨 후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문 밑으로 주먹밥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서 밥만을 얻어먹었다.

목 밑에는 송곳을 꽂은
널빤지를 받쳐 놓고 졸음을 쫓으며
용맹정진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3개월이 되던 11월 15일
곡식을 싣고 온 사람들이
벼 가마니를 내리면서,

“중은 시주 밥만 축낸 관계로
죽어서 소가 된단다.”

“그러나 소가 되어도
콧구멍이 없는 소만되면 되지.”

라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 때 스님의
제자 원규(元奎)라는 사미가 듣고는

이 말을 전하면서
“시주의 은혜만 지고 죽어서
소로 태어나되
콧구멍 없는 소만 되면
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다.

이 말에 경허 스님은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듬해 봄
호서 연암사 천장사로 옮겨와서
보림(保任)에 들어갔다.

그 다음 해 33세 되던 6월
비로소 일대사를 마치고
주장자를 꺾어 던지며
위에 소개한 오도송을 읊었다.


깨달음의 순간이란 종잡을 수 없다.
일기(一機),
즉 어떤 가르침에 의하여
마음의 기틀이 격발되는 경우가 있다.

할이나 방이나 꽃을 들어 보이거나
손가락을 들어 보이거나 하는 경우이다.

또 일경(一境),
즉 돌이 굴러가서
대나무에 닿는 것을 보거나
꽃이 핀 것을 보거나
바람소리 물소리를
듣거나 하는 경우에도 깨닫는다.

또 일언(一言)이라 하여
경허 스님의 경우처럼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우연히 듣다가 깨닫기도 한다.

또 일구(一句)에서도 깨닫는데
경전이나 조사들의 어록에서
글을 보다가 깨닫는 경우도 많다.

6조 혜능 스님이나
영가 스님 같은 경우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의 인연으로
잠자던 마음이 격발한다.

깨닫고 나면 세상과 인생이 달리 보인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다를 뿐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허 스님은
‘콧구멍 없는 소’
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깨쳤다.

깨닫고 나니
삼천대천세계가 온통 나의 집이었다.
그 전에는
나의 집은 절에 있는 작은 방 하나였다.

그렇다고
온 세계를 모두 자신 앞으로
등기이전을 한 것도 아니다.

털끝만한 작은 변화도 없었는데
세상천지가 모두 나의 집이었다.

6월 연암산 아랫길에
야인들이 부르는 노래가
비로소 태평가였다.

자신이 부르거나 남이 부르거나
모두가
태평세월의 태평가이더라는 것이다.

장부가 할 일을 능히 다 마친 것이다.

이제 마음 놓고
다리 뻗고 잠잘 수 있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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