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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의 향기

한 잔의 춘설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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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12-13 05:26 조회7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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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춘설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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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 바람 불 듯
전나무에 비 내리듯
끓기 시작하거든

지체 없이 동병을
죽로에 옮겨와야 한다.

물 끓는 소리와
그 소리를 듣는 내 마음마저
다 같이 고요해진 뒤에

한잔의 춘설차 맛은
제호보다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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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風檜雨到來初 急引銅甁移竹爐
송풍회우도래초 급인동병이죽로

待得聲聞俱寂後 一甌春雪勝醍醐
대득성문구적후 일구춘설승제호

- 청허휴정(淸虛休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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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西山, 1520~1604)
스님의 차시(茶詩)다.

이 정도의 차시라면
서산 스님은 빼어난 차인이다.

실은 차인이기 이전에
지극한 선인(禪人)이기에
차가 선의 경지에 이른 경우다.

가위 선차(禪茶)라고 할 만하다.


근년에 선이 대중화되면서
일상생활의모든 분야에서
다 선이 들어가 있다.

음식도 선식이라 하고,
글씨도 선서, 그림도 선화,
춤도 선무(禪舞), 무술도 선무(禪武),
아파트 구조도 선(禪)스타일이다.

우리나라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세계적 추세다.

서양에는 화장품을 만드는 데도
선의 정신으로 만들었다는
선전문구가 오른다.


선은
맑고 밝고 간결하고
소박하고 탈속하다. 그리고 고요하다.

자연스럽다.
조작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고
겉치레나 불필요한 것이 일체 없어서
절제의 극치다.

깊고 유연하다.
그러면서 어딘가 모르게 위엄이 있다.

이러한 정신이
모든 분야에 깃들어 있으면,
선의 무엇 무엇이라고 해도 된다.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자신의 깊은 선심을 드러내는 일은
선자(禪者)의 당연한 일상사다.

차를 마시려면 동병(銅甁)에
좋은 물을 떠다가 물을 끓여야 한다.

물이 끓는 소리가
마치 소나무에 바람이 불 듯하다가
다시 전나무에 비가 내리는 듯하다.

그 이상 끓으면 안 된다.

그때를 기다려서
곧바로 물 끓이던 동병을
얼른 죽로(竹爐)에 옮겨온다.

그리고 지금 막 따서 법제를 한 첫 차,
즉 춘설차의 잎을 넣는다.

그리고는 물이 끓는 소리도 잦아들고
그 소리를 듣던 사람의 마음도
함께 고요해지면
그 때에 가만히 찻잔에 부어 마신다.


무엇보다 선심이 젖어든
한 잔의 춘설차 맛은 세상맛이 아니다.
이것이 선차다.

“물 끓던 소리도 잦아들고
그 소리를 듣던
사람의 마음도 고요해지면····”
이라는 말에 뜻이 깊다.

대저 선차를 하는 사람들은
외적인 격식보다는
이 말에 마음을 써야 한다.

마음이 여기에 이르고 나면
그 때는 어떤 행동도,
어떤 자세도 모두가 선차가 된다.


『능엄경』에는
25명의 부처님 제자들이
각자가 수행한 방법들을
소개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중에서 관음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는 수행방법을
가장 훌륭한 방편이라고 하여 크게 권장한다.

이근원통이란 다름 아닌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다가
그 소리를 듣는 주인공을
듣는(살피는) 공부방법이다.


그것은 흔히
반문문자성(返聞聞自性)이라 한다.

즉 듣는 것을 돌이켜서
자성을 듣는다는 뜻이다.
자성을 듣는다는 것은
듣는 마음을 관조하는 일이다.

듣는 마음을 다시 관조하면
소리도 사라지고
듣는 그 자신도 사라져서
나와 우주가 하나가 되어
지극히 고요한 경지에 이른다.

청허 스님의 차를 끓이고
차를 마시는 일이 곧 이러한 경지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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