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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의 향기

보고 돌아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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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2-01-06 05:16 조회7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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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돌아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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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여

가보지 못했을 땐
천만 가지 한이었는데

가서 보고 돌아오니
별다른 일은 없고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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廬山煙雨浙江潮
여산연우절강조

未到千般恨不消
미도천반한불소

到得歸來無別事
도득귀래무별사

廬山煙雨浙江潮
여산연우절강조


- 소동파(蘇東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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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 북송 때의 시인이자 정치가며
시문서화(詩文書畵)에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던
소동파(蘇東坡, 1036~1101)의 시다.

본명은 소식(蘇軾)인데
호가 동파 거사이다.

아버지는 소순(蘇洵)이며
동생은 소철(蘇轍)로서
모두가 당송팔대가에 든다.

또한 전하는 바에 의하면
누이동생 소소매(蘇小妹)는
불교의 유명한 의식문인
「관음예문(觀音禮文)」을 지었다고 한다.

집안이 모두
문장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불교에도 남다른 안목을 지녔다.

동파 거사는
깨달음을 노래한 오도송도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이 시도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한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의 경지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고
마음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경지다.

일생 동안 깨달은 경지를 설했던
세존께서도 마지막에는
한 마디도 설한 적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곧 깨달음의 경지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다만
깨달은 사람만이 아는 자리다.

그래서
“도가 같아야 안다[同道可知]”
라는 말도 있다.

소동파는 이러한 사정을
신비한 풍광을 보았을 때의 심정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중국에는 땅도 넓거니와
아름다운 풍경도 무수히 많다.

계림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계림이 있다.”라고 하여
계림을 천당에 비기는 표현을 쓴다든지,
단하산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

“중국에 계림이 있다는 것만 알고
단하산이 있는 줄 모르면
견문이 없는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라고 하여
천당에 비기는 계림에
단하산도 못지않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에는 계림보다
더 아름답고 신비한 곳이 많다고 한다.


여산에 안개비가 내리고
절강에 물결이 드나드는 풍광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하였다.

실로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으로 헤아려도
짐작할 수 없는 경치인 것이다.

그 경치를 전해 듣기만 하고
가보지는 못한 사람들은
보고 싶은 한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직접 그곳에 가서
그 풍광을 보면
“별다른 것은 없고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었네”
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안개비는 안개처럼 보이면서
이슬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를 말한다.

우리말로 ‘는개’라 한다.
한자어로 표현하면
연우(煙雨) 또는 무우(霧雨)가 된다.
시에 나오는 절강(浙江)은
중국 남부 절강성 북부를 유역으로 하여
항저우만(杭州灣)으로 흘러드는
전당강(錢塘江, 410km)의 다른 이름이다.

절강의 물결을
전당강의 물결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전당강은
세계 최대의
바닷물 역류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다.

하류의 양안에는
산이 많아 조수가 사납다.

음력 팔월이면 한층 맹렬해지니
이것이 소동파가 말하는 절강조(浙江潮)다.

매년 가을 오자서(伍子胥)의 혼백이
큰 조류가 되어
이 강을 거슬러 오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있다.

특히 매년
음력 8월 15일부터 8월 18일 사이
전당강에는
큰 조수가 형성되어 장관을 이룬다.

그래서 이 시기에
정당강 대교에는
아마존강의 대역류를 방불케 하는
장관을 보기 위해
무수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여산(廬山, 1474m)은
중국 제일의 담수호인
파양호 주변에 있는 세계적인 명산이다.

단층 운동의 융기 작용으로 인해
형성된 여산에는
곳곳에 단애와 폭포가 산재해 있다.

연중 강수량이 1,833m에 이를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고 안개가 끼는 날이 많다.

그러니 산 아래에서
정상을 보기란 쉽지 않다.

소동파가
여산연우(廬山煙雨)를 말한 것은
이런 특징 때문이다.


사람들은 많은 말들을 동원하여
여산과 절강의 절경을 표현하려 했지만
사실은 그러한 절경을 전혀 표현하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말일뿐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은 아니다.

마치 세존이 팔만대장경을 설하고도
자신의 깨달음의 경지는
한마디도 설하지 못했다고 한 것과 꼭 같다.

팔만대장경은 아무리 많아도
말에 불과할 뿐 깨달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깨달음이란
직접 자신이 체험한 그것이지
체험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을
절묘하게 표현하였다.


봄이 되니 산이고 들이고
시골이고 도시고 할 것 없이 온통 꽃들이다.

꽃만 꽃이 아니라
풀도 나무도 모두가 꽃으로 피어난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그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지 막막하다.

찌푸리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까지도
꽃으로 피어난다.

이러한 계절에
꽃이 되어보지 않으면
언제 다시 꽃이 되겠는가.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다른 모든 지능과 감각이
정상이라 하더라도
이 아름다운 봄의 풍광을
설명해 주기는 어렵다.

하루 종일 열심히 설명하더라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맹인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저 형형색색의 꽃들과
연록색의 산천이 설명을 듣고
어떻게 상상이 되어졌을까.

여한만 천 가닥 만 가닥
가슴에 남을 뿐이다.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여,

가보지 못했을 땐
천만 가지 한이었는데

가서 보고 돌아오니
별다른 것은 없고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었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④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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