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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의 향기

다자탑전 분반좌(多子塔前 分半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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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2-01-12 05:22 조회7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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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탑전 분반좌
(多子塔前 分半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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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앉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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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子塔前 分半座
다자탑전 분반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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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존이 세 곳에서
가섭 존자에게 마음을 전했다는
소위 삼처전심(三處傳心)의
이야기 가운데 첫 번째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나온 것인데,
다자탑(多子塔)에 대해서는
『벽지론(辟支論)』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인용하니
뒷사람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왕사성에 한 장자가 살고 있었는데
재산이 한량없이 많고
아들과 딸이 각각 30명이 있었다.

장자가 멀리 나갔다가
어느 숲에 이르러
때마침 누군가가
큰 나무를 베는 것을 보았다.

그 나무는 가지가 너무도 무성하여
여러 사람이 끌어도 잘 끌어내지 못했다.

그 다음에
작은 나무를 베는 것을 보았다.

작은 나무는 가지가 없어서
한 사람이 끌어도 걸림이 없었다.
이 일을 보고
장자는 깨달은 바가 있어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내가 큰 나무를 베는 것을 보니

가지와 잎이 매우 무성하여
빽빽한 숲이 서로 얽혀 있으면
벗어날 수가 없네.

세상일도 그러하여

남녀와 모든 권속들이
미움과 사랑으로 얽혀 있으면
생사의 숲에서 벗어나지 못하네.

작은 나무는 가지가 없어서
빽빽한 숲에 걸리지 않나니

저 일을 보고 이 몸을 살피건대

미움과 사랑의 속박을 끊으면
생사의 숲에서 저절로 해탈하리라.


그리고 장자는
즉석에서 벽지불의 과위(果位)를 얻었다.

그가 열반에 들자
여러 아들들이
그를 위해 탑묘(塔廟)를 세웠다.

여러 아들들이 탑을 세웠다 하여
그 탑을
다자탑(多子塔)이라 부르게 되었다.


『선문염송』에서는
이 『잡아함경』의 글을 인용하여
“세존께서 다자탑 앞에서
인간과 하늘의 무리들에게
설법을 하시는데
가섭(迦葉)이 늦게 도착하였다.

세존께서
그와 자리를 나누어 앉도록 하시니
대중들이 모두 어리둥절하였다.”
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를 소개한 것은
세존이 세 곳에서 마음을 전했다는
삼처전심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그 뜻이 있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삼처전심이란 이 이야기와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염화미소(拈華微笑)와
사라쌍수하(沙羅雙樹下)의
곽시쌍부(槨示雙趺)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일을 통해
세존이 상수제자인 가섭 존자에게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여다는 것이
선법(禪法)의 연원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전했다는 것은
계주(繼走)하는 사람들이
바통을 전하는 것과는 다르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말에 떨어지지 말고
그 의미를 잘 체득해야 한다.


세존에게는
가섭이 오는 것을 보고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나
가섭이 그 자리에 앉는 것이
별다른 일이 아니다.

오직 일상사일 뿐이다.

가섭이 법석에 늦게 도착할 수도 있고,
세존은 자리가 마땅치 않은 가섭에게
자리를 좀 나누어 줄 수도 있다.

염화미소도 그렇다.
대범천왕이 부처님께 꽃을 올리니
부처님은 그 꽃을 들어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을 보고 가섭 존자는
미소를 머금을 수도 있다.

역시 일상사다.


그리고 또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 가운데
마음이 하지 않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사가 가장 특별하고 위대한 일이다.

볼 줄 알고, 들을 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배가 고프면 먹을 줄 알고
피곤하면 잠을 청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므로
특별하고 희유하고
신기하고 기기묘묘한 일이다.


한 먼지 속에 온 우주가 다 들어 있듯이
하나의 평범한 일 속에
팔만사천 법이 다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대서특필하였다.

선의 안목은
이렇게 평범한 일을
눈여겨 볼 줄 아는 안목이다.


이 일을 조금은 달리 표현하여
“옛 부처님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뚜렷하게 한 물건이 있었다.

그것을 석가는 모르는 일이다.

모르는 일을 어떻게
가섭에게 전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조종문하(祖宗門下)의
향성일로(向上一路) 소식이며,
세 곳에서 비밀리에 전했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전했다는 말인가.

비록 그렇더라도
편의상 전해 주고 전해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알아듣기 쉽고 편한가.

그래서 방편으로 세 곳에서나
이심전심(以心傳心)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 선가의 극칙공안(極則公案)은
소승경전인 『아함경』에서
그 근거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근래의 눈 밝은 선원에서
경전과 어록들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④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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