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불교의 요람 천년고찰 백암산 백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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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호남불교의 요람 천년고찰 백암산 백양사

인사말씀

일제강점기 불교정책인 1911년 사찰령 반포와 더불어 시행된 31본산 제도에 의해 한국 불교계는 일제에 장악되었다.

백양사는 전주 위봉사, 금산 보석사, 순천 송광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과 더불어 호남권을 대표하는 사찰이었다.


1914년 2월 발행된 「해동불교」 제4호에 의하면 호남 스님수는 6,656인이었다. 그 가운데 백양본말사의 스님 수는 193인으로 송광사 본말사 스님수(297인)의 다음이었다. 참고로 호남지역 스님수는 대흥본말사 160인, 선암본말사 140인, 화엄본말사 102인, 천은본말사 70인이었다.

사찰령 하의 1912년 12월, 幻應 坦永(1847-1929)이 백양사 초대 주지를 맡았다.

환응은 운문암을 중창했던 鏡潭 瑞官(1824-1904)에게 가르침을 받고 백양사 운문암에서 25년간 講席을 열었으며 산내 암자인 淸流庵에서 주석하였다. 1923년 문을 연 운문선원에는 용성이 주석하고 있었다. 당시 고암·석암·금포 등 40-50명의 승려들도 운문암에서 정진했으며, 특히 향곡·남전·인곡·운봉·법전도 함께 하였다.
그 후 환응은 1929년 1월 7일 개최된 朝鮮佛敎禪敎兩宗 승려대회에서 지금의 종정인 敎正으로 추대되었을 만큼 불교계에서 그 위상이 높았다. 이렇듯 환응이 백양사의 근대를 열었다고 한다면, 그의 가르침을 받은 曼庵 宗憲(1875-1957)은 대부분의 백양사 전각을 창건(백양사 6창)하는 등 현재의 백양사 사격을 일군 것으로 평가된다.

만암은 왜색 불교에 저항하여 조선 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예컨대 일제가 1910년 한국 불교계를 일본 불교계의 조동종에 병합시키려고 하였을 때, 만암은 그 이듬 해인 1911년에 석전 영호와 만해 한용운 등과 함께 임제종을 세우고 일제의 불교 침탈을 막았다.
曼庵은 1914년 백양사 제2대 주지에 선임되어 10개년 대중창 불사를 기획하였고, 1927년 이를 마무리하였다. 만암이 백양사 주지가 된 1916년 당시, 백양사에는 극락전 한 채만 남아있는 등 퇴락해 있었다. ‘주지 宋曼庵 화상의 지도하에 存하여 和合一致되어 共同心力으로서 一大 伽藍 法堂 寮舍 기타를 一新建築’하여 ‘백양사는 승속간의 누가 와서 보든지 환희심이 날만한 三寶住持의 대가람이며 선지식이 住할만한 대도량이다.’라고 하였다.
1900년 경 청류암과 운문암에서 강학과 참선이 전개되고 있을 무렵, 만암은 1914년 고불선원과 향적전을 건립하였다. 만암은 산내 암자인 청류암에 근대적인 승려교육기관인 廣城義塾을 열고, 쌍계루 옆에는 보통교육 기관인 ‘심상학교’(약수초등학교의 전신)를 세우는 등 민족 교육활동에도 매진하였다. 또한 생산적인 불교운동도 전개하여 전남여객 버스회사와 전남 베어링공장, 동광유지회사 등도 설립하였다. 아울러 사회 복지운동에도 힘써 인근 주민들을 위한 취로사업을 전개하였으며, 양로원인 청량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특히 1937년 1월에는 호남 4본산인 송광사·화엄사·대흥사·선암사와 더불어 5본산 연합회를 조직하여 포교·교육·사회 사업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1940년 당시 백양사는 ‘전남에 본산을 둔 백양사의 말사가 26사, 동 포교소가 12개’를 갖춘 도량이 되었다.
해방 직후 만암은 1947년 12월 8일 「호남 고불총림 결성 성명」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 상황 하에서 우리 민족혼까지 거의 소멸되기에 이르렀으며, 또한 불교도 식민지 불교가 되어 우리나라 전통의 형식과 정신이 모두 말살되어……오직 부처님의 대위덕 광명과 우리나라 고승선덕의 빛을 이어받고자 한다.’고 하였다. 당시 총림은 일제의 식민지 불교 청산과 민족정기의 함양, 승풍의 진작 등을 목표로 하여 전라도 20여 사암 및 포교당을 포함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총림이라고 할 ‘湖南古佛叢林’을 결성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만암의 문도 서옹 상순(1912-2003) 재임 시인 1996년 3월 31일 제120회 조계종 임시 중앙종회에서 백양사는 고불총림으로 인가되었다.

이미 해방 직후인 1947년 고불총림이 결성되었으나 6·25전쟁 등으로 유보되었다가 마침내 총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경내에는 고불선원, 운문암에는 선원, 향적전에는 강원, 청류암에는 율원, 청량원에는 염불원을 두었다. 서옹은 산내 암자 운문암 선원에서 처음으로 「벽암록」 법문을 하였으며, 1998년 고불총림에서 無遮禪會를 개최하고, 혜암·진제 등과 함께 한국 선의 수승함을 개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74년 대한불교 조계종 제5대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며, ‘참사람 수행결사’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고불총림은 2019년 11월 6일 해제되어 백양사는 교구 본사로 전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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