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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임제록 연의/ 3-9.삼안국토(三眼國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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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5-26 05:42 조회1,648회 댓글0건

본문

서옹스님의 [ 임제록 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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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示衆

삼안국토(三眼國土)


묻되

“어떤 것이 삼안국토(三眼國土)입니까?”

임제스님은 말했다.

“나는 너희들과 같이
정묘국토중(淨妙國土中)에 들어가서
청정의(淸淨依)를 입고 법신불을 설한다.

또 무차별(無差別)국토 중에 들어가서
무차별의(無差別依)를 입고 보신불을 설한다.

또 해탈국토(解脫國土)중에 들어가서
광명의(光明依)를 입고 화신불을 설한다.

삼안국토(三眼國土)는
다 내가 행동하는 데에 따라서 만들어진
경계의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경론을 연구하는 교학자(敎學者)의 입장으로는
법신을 가지고서 근본을 삼고
보신, 화신(化身)을 용(用)으로 삼는다.

그러나 나의 견지로는
이 법신은 도법(道法)을 설 할 줄을 모른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불신(佛身)은 현상에 의해서 세운 것이고
불국토는 법성(法性)의 본체에 의해서 논한 것’
이라 했다.

그러므로
법성의 불신(佛身)과 법성의 불국토는
건립한 법이고
의지해서 생각한 국토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빈주먹에 무엇이 들어 있는 것 같이 속이고,
누런 잎사귀를
황금이라고 어린애를 속이는 것과 같다.

질려 풀이나 마른가시의 마른 뼈 같은 것에서
무슨 국물을 찾는단 말인가.
마음 밖에 아무것도 없고,
안에도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

그런데 무엇을 구한다는 말이냐?



너희들은 제방(諸方)에서
‘수행이 있고 증득함이 있다’고 말한다.

잘못해서는 안된다.

설사 수행해서 얻는 것이 있다 해도
이것은 다 생사윤회의 업이다.

또 너희들은
‘육도만행(六度萬行)을 빠짐없이 다 닦는다.’
고 말한다.

내 견해로는 모두 업을 짓는 것이다.

부처를 구하고 법을 구하는 것도
바로 지옥의 업을 짓는 것이요,
보살을 구하는 것도 또한 업을 짓는 것이며
경(經)을 읽고 교(敎)를 보는 것
또한 업을 짓는 것이다.

부처와 조사는 일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불조(佛祖)에 있어서는
번뇌와 조작하는 것도 또한 이와 반대로
번뇌 없는 것과 조작이 없는 것이다.

무심무작(無心無作)의 청정한 업이 되는 것이다.

눈먼 승려들이 있어서
배부르게 밥 먹고, 좌선을 하고,
관법(觀法)을 행하여
생각 일어나는 것을
꽉 잡고서 일어나지 않게 하여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고 조용한 것을 찾는다.

그렇지만 이것은 외도법(外道法)이다.

조사(祖師)가 말하기를

‘너희들이 만일
마음을 일어나지 않게 하여 고요한 것을 보며
마음을 일으켜서 밖으로 관찰하며
마음을 거두어 잡아서 안으로 밝히며,
마음을 모아 뭉쳐서 선정 (禪定)에 들면
이렇게 하는 것은 다 조작이다’

라고 했다.

이 그대 자신이 지금
이렇게 법(法)을 듣는 사람을
어떻게 저를 닦고
증득(證得)하며 장엄(莊嚴)하려 하느냐?

저는 닦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요,
장엄(莊嚴)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만일 저로 하여금
장엄(莊嚴)하게 하면
일체 물건을 장엄(莊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하니
너희들은 잘못하지 말도록 하여라.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여,

너희들은
이 일반(一般)의 노사(老師)말을 갖고서
이것이 참도[眞道]라 하고,
이 선지식을 불가사의라 하고
‘우리는 범부 마음이니
어찌 감히 저 훌륭한 큰스님을
측량복탁(測量卜度)하겠는가’라고 한다.

눈먼 어리석은 사람아.

너희들은 일생을
다만 이러한 견해를 갖고서
이 두 눈을 못 쓰게 하고,
추워서 입을 다물고, 벌벌 떨면서

얼음자 위로 가는 당나귀 망아지와 같다.

‘나는 감히 선지식을 비방하지 못한다.
구업을 짓는 것이 무섭다’ 고 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여,

참으로 큰 선지식이라야
감히 부처를 비방하고
조사(祖師)를 비방하며
천하 선지식을 비판하며
경, 율, 론, 삼장교(三藏敎)를 배척하며,
어린애 같은 무리들을 꾸짖고 욕한다.

그래서
역순중(逆順中)에서 사람을 찾는다.
그러므로
나는 십이 년 동안에
한 개의 업성(業性)을 찾아도
겨자씨만큼도 얻을 수가 없다.

만일 신부가
시어머니를 무서워하는 것 같은 선사이면
절에서 쫓겨나서 밥도 얻어먹을 수 없어서
안락하지 못함을 무서워한다.

옛날부터 선배들은
도처에서 사람이 믿지 아니하여
절에서 쫓겨나고서
비로소 훌륭한 사람인 줄 알게 된다.

만일 도처에서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면
무슨 쓸 데가 있는 선사(禪師)라 하겠는가?

그러므로
‘사자가 한번 울면
여우들의 머리 뇌가 찢어져 버린다’고 했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여,

제방(諸方)에서 말하기를
‘닦을 도가 있고 증득할 법이 있다’고 한다.

너희들은
무슨 법을 증득하며
무슨 도를 닦는다고 말하느냐?

네가 지금 활동하는 곳에
무엇이 모자라며,
어느 곳을 고쳐 기운다고 하느냐?

후배의 젊은 스님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바로 들여우의 도깨비 같은 것을 믿어서
저희들이 일을 설하여
타인을 결박하여 말하기를,
‘교리(敎理)와 실행(實行)이 일치하며
몸과 업과 뜻의 삼업(三業)을 잘 수호여야만
비로소 성불할 수 있다.’라고 한다.

이와 같이 말하는 이가 봄 가랑비와 같이 많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길에서 도를 통달한 사람을 만나면
제일로 도를 말하지 마라.’고 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만일 사람이 도를 닦으면
도는 행하여지지 않고
도리어 만 가지 삿된 경계가
서로 다투어 일어나게 된다.

반야지혜(般若智慧)의 칼이 나온즉
한 물건도 없다.
밝은 머리가 나타나지 아니하여
깜깜한 머리가 바로 밝다.’

고 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은
‘아무 조작 없이
평상(平常)한 때의 마음이 도이다.’
라고 말했다.



대덕이여,
무엇을 찾으려고 하느냐?

현금에 내 눈앞에서
법문을 듣는 의지함이 없는 도인이
역력하게 분명해서 조금도 모자라지 않다.

네가 만일
조불(組佛)과 다르지 않기를 원한다면
다만 이와 같이 보고 의심하여 잘못 알지 마라.

너희들의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산[活] 조사(祖師)라고 이름 한다.

마음이 만일 다름이 있으면
마음의 본성과 현상이 다르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다르지 않으므로
마음의 본성과 현상이 다르지 않다.”


< 착어(着語) >

寧可永却沉淪이언정
不求諸聖解脫이니라.

차라리 가히
영겁토록 지옥에 빠질지언정
모든 성인의 해탈을 구하지 않느니라.


※※※ 주 ※※※※※※※※※※※※※

1) 의통국토(依通國土) :
토거체론(土據體論)에 응(應)하는 말.
니통(你通)은 자체로는 자립할 수 없는
상대적 이해라는 뜻. 국토는 공명(空名)일 뿐이다.

2) 일반할독자(一般瞎禿子) :
한 무리의 눈먼 승려.

3) 조사운(祖師云) :
주심간정(住心看靜) 이하(以下)글귀는
하택신회(荷澤神會 684~758)가
북종선을 배격(排擊)하기 위해 주장한 것으로
유명한 말이다.

4) 고인운(古人云) :
사공산(司空山)
본정선사(本淨禪師 667~761)의 말로,
**조당집(祖堂集) 권3**에 있음.
소이언(所以言)이하
고인(古人)의 게(偈)를 인용했으나 출처불명.

5) 심심불이(心心不異) :
심성(心性)인 심(心)과
식심(識心)인 심이 불이(不異).

6) 명두미현 암두명(明頭未顯 暗頭明) :
이 옛사람의 말을
아키츠키 료민(秋月龍珉) 교수는
“만일 사람이 도(道)를 수행하면
도는 행해지지 않고
도리어 모든 사경(邪境)이 앞을 다투어 나온다.
반야의 지검(智劍)이 나오면
아주 한 물건도 없어져서
그 여러 가지 차별의 사경(邪境)이
아직 나타나기 전에
평등한 깬 세계가 명백하게 된다”고 말했는데
옛 사람의 견지(見地)와는 틀리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 착어(着語)해 보겠다.

“지지일이점등(只知日裡點燈) 하고
차불지반야발흑(且不知半夜發黑)이로다.”

“다만 낮에 등불 켤 줄만 알고,
또한 밤중에
먹물 뿌릴 줄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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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문),
如何是三眼國土(여하시삼안국토)오?

師云(사운),
我共儞入淨妙國土中
(아공이입정묘국토중)하야
著淸淨衣(착청정의)하고
說法身佛(설법신불)하며,
又入無差別國土中
(우입무차별국토중)하야
著無差別衣(착무차별의)하고
說報身佛(설보신불)하며,
又入解脫國土中(우입해탈국토중)하야
著光明衣(착광명의)하고
說化身佛(설화신불)하나니,
此三眼國土(차삼안국토)는
皆是依變(개시의변)이니라.

約經論家(약경론가)하면
取法身爲根本(취법신위근본)하고
報化二身爲用(보화이신위용)하나
山僧見處(산승견처)는
法身卽不解說法(법신즉불해설법)이라.

所以(소이)로 古人云(고인운),
身依義立(신의의립)이요
土據體論(토거체론)이라하니,
法性身法性土(법성신법성토)는
明知是建立之法(명지시건립지법)이요.
依通國土(의통국토)니
空拳黃葉(공권황엽)으로
用誑小兒(용광소아)니라.

蒺藜菱刺(질여능자)와 枯骨上(고골상)에
覓什麽汁(멱십마즙)고?
心外無法(심외무법)이요
內亦不可得(내역불가득)이니
求什麽物(구십마물)고?



儞諸方言道(이제방언도)호대
有修有證(유수유증)이라하니
莫錯(막착)하라.

設有修得者(설유수득자)라도
皆是生死業(개시생사업)이며
儞言六度萬行齊修
(이언육도만행제수)라하나,
我見皆是造業(아견개시조업)이니라.

求佛求法(구불구법)은
卽是造地獄業(즉시조지옥업)이라
求菩薩亦是造業(구보살역시조업)이요.
看經看敎간경간교)도
亦是造業(역시조업)이니
佛與祖師(불여조사)는
是無事人(시무사인)이라.

所以有漏有爲(소이유루유위)와
無漏無爲(무루무위)가
爲淸淨業(위청정업)이니라.

有一般瞎禿子(유일반할독자)하야
飽喫飯了(포긱반료)하고,
便坐禪觀行(변좌선관행)호대
把捉念漏(파착념누)하야
不令放起(불령방기)하며
厭喧求靜(염훤구정)하나니
是外道法(시외도법)이니라.

祖師云(조사운),
儞若住心看靜(이약주심간정)하며
擧心外照(거심외조)하고
攝心內澄(섭심내징)하며
凝心入定(응심입정)하면
如是之流(여시지류)는
皆是造作(개시조작)이라하니라.

是儞如今與麽聽法底人
(시이여금여마청법저인)을
作麽生擬修他證他莊嚴他
(작마생의수타증타장엄타)리오.

渠且不是修底物(거차불시수저물)이며
不是莊嚴得底物(불시장엄득저물)이니라.

若敎他莊嚴(약교타장엄)하면
一切物(일체물)을
卽莊嚴得(즉장엄득)이니
儞且莫錯(이차막착)하라.



道流(도류)야
儞取這一般老師口裏語
(이취자일반노사구리어)하야
爲是眞道(위시진도)하야
是善知識(시선지식)은 不思議(부사의)요.
我是凡夫心(아시범부심)이니
不敢測度他老宿(불감측탁타노숙)이라하나니

瞎屢生(할루생)이여
儞一生(이일생)을
祇作這箇見解(지작자개견해)하야,
辜負這一雙眼(고부자일쌍안)하니
冷噤噤地(냉금금지)가
如凍凌上驢駒相似
(여동릉상려구상사)로다.

我不敢毁善知識
(아불감훼선지식)이라
怕生口業(파생구업)이라하니라.


道流(도류)야,
夫大善知識(부대선지식)이
毁佛毁祖(시감훼불훼조)하며
是非天下(시비천하)하며,
三藏敎(배척삼장교)하며
罵辱諸小兒(매욕제소아)하야,
順中覓人(향역순중멱인)하나니
我於十二年中(소이아어십이년중)은,
箇業性(구일개업성)을
如芥子許(여개자허)도
不可得(불가득)이니라.

若似新婦子禪師(약사신부자선사)하면
便卽怕趁出院(변즉파진출원)하야
不與飯喫(불여반긱)하야,
不安不樂(불안불락)이어니와
自古先輩(자고선배)가
到處人不信(도처인불신)하고
被趁出(피진출)하야,
始知是貴(시지시귀)하나니
若到處人盡肯(약도처인진긍)하면
堪作什麽(감작심마)오?

所以師子一吼(소이사자일후)에
野干腦裂(야간뇌열)이니라.



道流(도류)야
諸方說有道可修(제방설유도가수)하며
有法可證(유법가증)하나니
儞說證何法修何道(이설증하법수하도)오?

儞今用處欠少什麽物
(이금용처흠소십마물)이며
修補何處(수보하처)오?

後生小阿師不會
(후생소아사불회)하야
便卽信這般野狐精魅
(변즉신자반야호정매)하야
許他說事(허타설사)하야
繫縛他人言道(계박타인언도)호대,

理行相應(이행상승)하고
護惜三業(호석삼업)하야사
始得成佛(시득성불)이라하니,
如此說者(여차설자)는
如春細雨(여춘세우)로다.

古人云(고인운),
路逢達道人(노봉달도인)이어든
第一莫向道(제일막향도)하라하니라.

所以言(소이언)
若人修道道不行(약인수도불행)이니
萬般邪境競頭生(만반사경경두생)이라.

智劍出來無一物(지검출래무일물)하야
明頭未顯暗頭明(명두미현암두명)이로다.

所以(소이)로 古人云(고인운),
平常心是道(평상심시도)라하니라.



大德(대덕)아
覓什麽物(멱십마물)고?

現今目前聽法無依道人
(현금목전청법무의도인)이
歷歷地分明(역력지분명)하야
未曾欠少(미증흠소)하니,
儞若欲得與祖佛不別
(이약욕득여조불불별)인댄
但如是見(단여시견)이요
不用疑誤(불용의오)니라.

儞心心不異(이심심불이)를
名之活祖(명지활조)니
心若有異(심약유이)하면
則性相別(즉성상별)이요,
心不異故(심불이고)로
卽性與相不別(즉성여상불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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