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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임제록 연의/3-10.마음 마음이 다르지 않는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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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5-27 05:35 조회1,723회 댓글0건

본문

서옹스님의 [ 임제록 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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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示衆

마음 마음이 다르지 않는 경계


묻되

“어떤 것이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은 곳입니까?”

스님이 이르시기를

“네가 물으려고 할 때에 벌써 달라져 버렸다.
본성과 현상이 서로 각각 나누어져 버렸다.

도를 배우는 여러분,

잘못하여서는 안 된다.
세간의 모든 법이나
출세간(出世間)의 모든 법이
모두 본성인 자성도 아니고
또 현상을 내는 봉성도 없다.

다만 빈이름뿐이고,
그 이름도 또한 공한 것이다.

너희들은 오로지
저 허망한 이름을 인정하여 진실한 것을 삼는다.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설사 있더라도
모두 나를 의지하여 변해
만들어진 경계에 지나지 않는다.

한낱 보리의 의지, 열반의 의지,
해탈의 의지, 삼신(三身)의 의지, 경지의 의지,
보살의의지, 부처의 의지가 있다.

너희들은
차별 없는 참사람이 작용하여 만들어낸
국토 가운데에 무슨 물건을 찾느냐?
그 근본은 없는 것이다.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
즉 팔만대장경도 다 똥 닦는 화장지다.

부처는 영화의 그림 같은 것이다.
조사는 늙은 중이다.

너희들은
어머니가 낳은 진짜 산 것이 아니냐?

네가 만일 부처를 구하면
부처 마구니한테 잡히게 된다.

네가 만을 조사를 구하면
바로 조사 마구니한테 결박을 당하게 된다.

네가 구하는 것이 있으면 다 괴롭게 된다.

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조작 없이 활동하는데 참 자유가 있다.

납자들은
도를 배우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부처는
사람에 있어서 가장 극치가 되는 것이다.
삼대아승지(三大阿僧祗)라는
한량없는 세월을 수행하여
원만히 성취한 뒤에
비로소 도(道)를 이룬 것이다’라고 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여,

네가 만일 말하기를
‘부처는 사람에 있어서
가장 극치가 되는 것이다’하면
어째서
부처는 팔십 년을 사시다가
구시라성(拘尸羅城)의 사라쌍수 사이에서
옆으로 누우셔서 돌아가셨는가?
부처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그러므로
부처도 우리의 생사와 다를 게 없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다.

그대들은 말하기를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가 부처이다’라고 한다.
그러면 전륜성왕도
삼십이상 팔십종호를 갖추고 있으니
부처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것은 참된 것이 아니다.
환(幻)과 같은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여래 전신(全身)의 현상은
세간의 인정을 쫓아서 말한 것이다.

형상을 나투어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다는
단견(斷見)을 낼까 걱정이 되어
방편으로 없는 이름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삼십이상도 거짓말이고,
팔십종호도 헛소리다.
형상이 있는 몸은
진정코 깨달은 부처몸이 아니요,
형상 없는 것이
참으로 부처의 형상(形相)이다’
라고 했다.


그대들은 말하기를

‘부처는 여섯 가지 신통(神通)이 있으니
이것은 불가사의한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제천(諸天), 신선, 아수라,
대력귀(大力鬼)도 다 신통이 있으니
이것들도 부처라고 하여야 될 것이다.

도 닦는 여러분,
잘못해서는 안 된다.
저 아수라가 제석천왕과 싸우다가
싸움에 져서
팔만사천권속(八萬四千眷屬)을 거느리고
연(連)뿌리 실속으로 들어가서 숨었다 하니
이것이 성인이라 하겠구나.

신통이 있다고 하여
아수라를 성인이라고 하겠는가?

이와 같이 들어서 이야기한 것은,
모두 업으로 얻은 신통,
또는 어떤 힘을 의지하여 얻은 신통들이다.

대관절
부처의 여섯 가지 신통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색(色)을 보고도 색의 미혹을 받지 않고,
소리를 듣고도 소리의 미혹을 받지 않으며,
향기를 받고도 향기의 미혹을 받지 않는다.
맛을 보고도 맛의 미혹을 받지 않고,
감촉을 받고도 감촉의 미혹을 받지 않으며,
여러 가지 법(法)을 알아도
법(法)의 미혹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섯 가지 색성향미촉법이
다 공한 상(相)이어서
실체가 없는 줄 통달하면
이 의지함이 없는 도인(道人)을
잡아매어 묶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사람은
오온(五蘊)의 육체와 마음을 가졌으나
바로 이것이
땅 위를 보행하는 신통을 가진 사람이다.



도류(道流)여,
참부처는 형상이 없고,
참법도 형상이 없다.

네가 오로지
환화(幻化)위에 여러 가지 조작을 하여
망령된 견지로 본다.

설사 구하여 얻었다 하여도
모두 들여우의 도깨비 같은 혼의 장난이요.
결코 참부처가 아니며,
이것은 외도의 견해이다.
대저 참으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결코 부처도 취하지 않으며
보살과 나한도 취하지 않으며,
삼계의 승한 것도 취하지 않는다.

멀리 홀로 초월하여
물건에 걸리지 않나니
천지가 전복되는 일이 있어도
나는 다시 의심하지 않는다.

시방의 제불(諸佛)이 앞에 나타날지라도
한 생각 마음이 기쁠 게 없으며,
불과 칼과 피의 삼도지옥(三途地獄)이
갑자기 나타날지라도
한 생각 마음이 두려울 게 없다.

왜 이러한가?
모든 법(法)이 공(空)하여 실체가 없으며
변하면 있고 변하지 않으면 없나니,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식(識)임’
을 내가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꿈같고 환(幻)같고, 허공꽃 같은 것을
어찌 애써 잡으려느냐?’ 고 한 것 이다.

나의 목전에서 현금(現今)법을 듣는 사람인
바로 도를 배우는 여러분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으며,
삼도지옥(三途地獄)에 들어가도
공원에서 노니는 것 같이 하며,
아귀도(餓鬼道)와
축생도(畜生道)에 들어가도
보(報)를 받지 않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혐의(嫌疑)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만일
성인을 좋아하고 범부를 미워하면
생사 바다 속에 빠졌다 떴다 하게 된다.

번뇌는 마음으로 인(因)하여 있는 것이니
마음이 없으면 번뇌가 어찌 구애되겠는가?

애써 분별하고 상(相)에 집착하지 않으면
자연히 도를 얻게 된다.

그대들은
밖으로 분주하게 배우려고 하여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이라는
한량없는 세월을 애써도
결국은 생사를 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아무 조작 없고 일없이 해서
선방(禪房) 가운데 자리에
발을 포개고 앉는 것만 같지 못하다.”


< 착어(着語) >

情閑하니 巖樹看愈好하고
室靜하니 磵泉聞轉幽라.

마음속이 한가하니
바위의 나무를 보매 더욱 좋고
방이 고요하니
석간 샘물 소리를 들음에 더욱 그윽하다.


※※※ 주 ※※※※※※※※※※※※※

1) 자성. 생성(自性. 生性) :
자성은 자기 외의 본성,
생성은 현상으로 생(生)하는 본성.
다 공명(空名)이며 실체는 없다.

2) 경지(境智) :
소관(所觀)의 경, 능관(能觀)의 지(智).

3) 환시랑생이부(還是娘生已否) :
‘어머니가 낳으신 것 아니냐?’란 뜻.
부처나 조사도 어머니가 낳은 몸이니,
그대 역시 아무런 모자람이 없다는 뜻.
‘還...已否’는 반문(反問)의 어기(語氣)를 표함.

4) 구시라성(拘尸羅城) : 불타입멸지.

5) 쌍림수(雙林樹) :
불타(佛陀)는 쌍(雙)으로 선
사라수하(沙羅樹下)에서 입멸하셨다 함.
쌍수림(雙樹林) 학림(鶴林)이라고도 함.

6) 32상 80조호 ;
훌륭한 인간의 특징을 말함이니
고대 인도에는 이 상을 가진 자는
세간(世間)에 있으면
천하를 통치하는 전륜성왕.
출가하면
무상각자(無上覺者)가 된다고 믿었다.

7) 단견(斷見) :
세계와 자아가 상주불명(常住不滅)한다는
상견(常見)에 대해서
세계와 자아가
마침내는 소멸해서 허무하게 된다는 견해.
세존은 단(斷)과 상(常)의 이견(二見)을 여윈
중도(中道)의 정견(正見)을 교시했다.

8) 각체(覺體) : 무위진인(無位眞人).

9) 육통(六通) :
신족통(神足通)은 마음먹는 곳에
자유로이 나투는 능력.
천안통(天眼通)은
내세(來世)에 있는 상태를 잘 아는 능력.
천이통(天耳通)은
세간의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능력.
타심통(他心通)은 타인의 마음을 아는 능력.
숙명통(宿命通)은
과거세의 생존 상태를 아는 능력.
누진통(漏盡通)은
번뇌를 끊어 버리고
다시 미계(迷界)에 나지 않음을 깨닫는 능력.
이상의 육신통 중
전오통(前五通)은
제천(諸天), 신선(神仙), 외도(外道)도 있으나,
누진통은 부처만 가짐.

10) 업통의통(業通依通) :
업력(業力)으로 얻은 신통과
물력(物力)으로 얻은 주술 등으로 얻은 신통.

11) 오온누질(五蘊漏質) :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가화합(五蘊假和合)의 신체.
누질(漏質)은 번뇌의 형질.

12) 지행신통(地行神通) :
지상을 보행하는 평상생활로 현현(顯現)하는 신통.

13) 작모작양(作模作樣) :
분별조작하여 어긋난 수행.

14) 삼도지옥(三塗地獄) :
화도(火塗), 혈도(血塗), 도도(刀塗)의 삼지옥.

15) 이락애성증범
(你若愛聖憎凡.....自然得道須)
보지공화상(寶誌公和尙)의
**대승찬(大乘讚)**의 구(句).

16) 상각두(牀角頭) :
좌선상의 위(坐禪牀上)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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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문),
如何是心心不異處(여하시심심불이처)오?

師云(사운),
儞擬問早異了也(이의문조이요야)니
性相各分(성상각분)이로다.


道流(도류)야 莫錯(막착)하라.

世出世諸法(세출세제법)이
皆無自性(개무자성)하며,
亦無生性(역무생성)하고
但有空名(단유공명)하야
名字亦空(명자역공)이어늘
儞祇麽認他閑名爲實
(이지마인타한명위실)하니
大錯了也(대착료야)로다.

設有皆是依變之境
(설유개시의변지경)이라
有箇菩提依(유개보리의)와
涅槃依(열반의)와 解脫依(해탈의)와
三身依(삼신의)와 境智依(경지의)와
菩薩依(보살의)와 佛依(불의)니라.

儞向依變國土中(이향의변국토중)하야
覓什麽物(멱십마물)고?

乃至三乘十二分敎(내지삼승십이분교)는
皆是拭不淨故紙(개시식부정고지)며
佛是幻化身(불시환화신)이요
祖是老比丘(조시노비구)니,

儞還是娘生已否(이환시낭생이부)아?

儞若求佛(이약구불)하면
卽被佛魔攝(즉피불마섭)이요,
儞若求祖(이약구조)하면
卽被祖魔縛(즉피조마박)이니,
儞若有求皆苦(이약유구개고)라
不如無事(불여무사)로다.



有一般禿比丘(유일반독비구)하야
向學人道(향학인도)호대
佛是究竟(불시구경)이니
於三大阿僧祇劫(어삼대아승지겁)에
修行果滿(수행과만)하야
方始成道(방시성도)라하니,

道流(도류)야
儞若道佛是究竟(이약도불시구경)인댄
緣什麽(연십마)하야
八十年後(팔십년후)에
向拘尸羅城雙林樹間
(향구시라성쌍림수간)하야,
側臥而死去(측와이사거)며
佛今何在(불금하재)오?

明知 與我生死不別
(명지 여아생사불별)이니라.

儞言(이언),
三十二相八十種好是佛
(삼십이상팔십종호시 불)이라하니
轉輪聖王(전륜성왕)도
應是如來(응시여래)라
明知是幻化(명지시환화)로다.

古人云(고인운),
如來擧身相(여래거신상)은
爲順世間情(위순세간정)이라
恐人生斷見(공인생단견)하야
權且立虛名(권차입허명)이로다.
假言三十二(가언삼십이)하고
八十也空聲(팔십야공성)이니
有身非覺體(유신비각체)요
無相乃眞形(무상내진형)이로다.


儞道(이도)호대
佛有六通(불유육통)하야
是不可思議(시 불가사의)라하니,
一切諸天(일체제천)과
神仙阿修羅(신선아수라)와
大力鬼(대력귀)도 亦有神通(역유신통)하니
應是佛否(응시 불부)아?

道流莫錯(도류막착)하라
祇如阿修羅(지여아수라)가
與天帝釋戰戰敗(여천제석전전패)에
領八萬四千眷屬(영팔만사천권속)하고,
入藕絲孔中藏(입우사공중장)하니
莫是聖否(막시성부)아?

如山僧所擧(여산승소거)는
皆是業通依通(개시업통의통)이니라.

夫如佛六通者(부여불육통자)는
不然(불연)하야
入色界不被色惑(입색계불피색혹)하며
入聲界不被聲惑(입성계불피성혹)하며
入香界不被香惑(입향계불피향혹)하며
入味界不被味惑(입미계불피미혹)하며
入觸界不被觸惑(입촉계불피촉혹)하며
入法界不被法惑(입법계불피법혹)하니라.
所以(소이)로
達六種色聲香味觸法
(달육종색성향미촉법)이
皆是空相(개시공상)이라.

不能繫縛此無依道人
(불능계박차무의도인)하야
雖是五蘊漏質(수시오온누질)이나
便是地行神通(변시지행신통)이니라


道流(도류)야
眞佛無形(진불무형)이요
眞法無相(진법무상)이라.
儞祇麽幻化上頭(이지마환화상두)에
作模作樣(작모작양)하야
設求得者(설구득자)나
皆是野狐精魅(개시야호정매)요
幷不是眞佛(병불시진불)이니
是外道見解(시외도견해)니라.

夫如眞學道人(부여진학도)은
幷不取佛(병불취불)하며
不取菩薩羅漢(불취보살나한)하며
不取三界殊勝(불취삼계수승)하고
逈然獨脫(형연독탈)하야
不與物拘(불여물구)니라.

乾坤倒覆(건곤도복)하야도
我更不疑(아갱불의)하며
十方諸佛現前(시방제불현전)하야도
無一念心喜(무일념심희)하고,
三塗地獄頓現(삼도지옥돈현)하야도
無一念心怖(무일념심포)하나니
緣何如此(연하여차)오?

我見諸法空相(아견제법공상)일새
變卽有(변즉유)하고,
不變卽無(불변즉무)니라
三界唯心(삼계유심)이요,
萬法唯識(만법유식)이니
所以(소이)로
夢幻空花(몽환공화)를
何勞把捉(하로파착)가하니라.


唯有道流(유유도류)의
目前現今聽法底人
(목전현금청법저인)하야
入火不燒(입화불소)하며
入水不溺(입수불익)하며
入三塗地獄(입삼도지옥)호대
如遊園觀(여유원관)하며
入餓鬼畜生而不受報
(입아귀축생이불수보)하나니
緣何如此(연하여차)오?

無嫌底法(무혐저법)일새니라.

儞若愛聖憎凡(이약애성증범)하면
生死海裏沈浮(생사해리침부)하리니
煩惱由心故有(번뇌유심고유)라
無心煩惱何拘(무심번뇌하구)리오?

不勞分別取相(불노분별취상)하면
自然得道須臾(자연득도수유)니라.

儞擬傍家波波地學得
(이의방가파파지학득)하면
於三祇劫中(어삼지겁중)에
終歸生死(종귀생사)하리니
不如無事(불여무사)하야
向叢林中(향총림중)하야
牀角頭交脚坐(상각두교각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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