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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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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2-01 07:51 조회1,9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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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서옹 큰스님 법문집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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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04.

공안(公案)의 어원


‘선(禪)’은
‘선나(禪那)’라는 말로
범어(梵語)의 음역(音譯)이다.

의역하면 ‘정려(靜慮)’가 되며
‘고요히 생각한다’는 뜻이 된다.

또 ‘좌선(坐禪)’은
‘앉아서 고요히 생각한다’
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자세를 단정하게 가져 호흡을 정돈하고
향을 피우고 맑은 분위기 속에서
엄숙한 태도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선인 것이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느냐?
인생을 생각하고 있는가?

인생은 무엇이냐,
무엇을 하는 것이냐,
어디서 왔으며 결국 어디로 가는 것이냐,
생(生)은 무엇이며 사(死)는 무엇이냐,

또한 우주와 인생은 어떠한 관계가 있으며
인생이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 등등

인생의 참된 본래면목이
무엇이냐고 되묻는 것이 선인 것이다.

사람의 일생이란 참으로 귀한 것이다.
무엇으로도 대상(代償)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두 번 다시 얻지 못하는 일생을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올바르게 생을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당신이 잘못된 인생관으로 살아간다며
참된 자아(自我)를 보지 못하고
모처럼 얻은 귀중한 일생을 헛되게 보내는
거짓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인생은 고(苦)된 것이다.
이 고(苦)란 어디서 왔느냐’
그리고
고(苦)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참된 본래의 면목을 깨달을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스스로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참된 깨달음을 얻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이다.
이 한 길을 깊이 구명해야
우리는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다.
즉 그러기 위해서는 고요히 ‘명상’을 해야 한다.

인생의 고(苦)와 그 원인,
그리고

그 구제와 구제되는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석가세존 재세시(在世時)에
기억력이 둔한 제자 한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마저 기억 못해
늘 명패를 목에 걸고 있었다.

세존은
이 기억력 없는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먼지를 털고 때를 벗긴다’
라는 한 구절만 외우라고 했다.

그 제자는 삼년이란 세월동안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일념으로 이 짧은 한 구절만을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마음의 먼지가 차츰 털리고 때가 벗어져
홀연히 먼지도 때도 없고 번뇌도 없으며
보리(苦提)도 없는
참된 나의 경지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부처님이 깨달은 경지를
돈성(頓成)하는 조사선(祖師禪)은
학문이 없어도, 기억력이 둔해도
고요히 앉아서
한 가지 문제에 대해
절대적으로 꾸준히 의심하면
나의 참된 본래면목이
스스로 깨달아진다는 말이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라 하겠다.

이 짧은 한 문제는
마치 깨달음에 드는 관문을 통과는
통행허가증과 같은 것으로
공부(公府)의 안독(案牘),
즉 공안(公案)이라 이름했던 것이다.

나는 아름답다하고 비단 옷을 입는다

선(禪)은 따로 말할 것도 없고
입을 열면 벌써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항하사 모래수와 같이 많은 부처님들은
붉은 화로에 떨어진 한 점의 눈과 같고
우주와 삼라만상이 항상 대광명을 놓고 있다.

恒河沙諸佛 紅爐一點雪
乾坤並萬像 常放大光明

()
이 도리에 통연명백(洞然明白)하면
일대사인연을 요달해 마쳤다고
고금의 성현들이 말씀하셨다.





 
신라 파초혜정(芭蕉慧淸)선사가 말하기를

“너에게 주장자가 있으면
나는 너에게 주장자를 주고
너에게 주장자가 없으면 나는
너에게 주장자를 뺏는다.

(爾有拄杖子 我與爾拄杖子
爾無拄杖子 我奪爾拄子)”

고 하였다.

또 무문(無門) 스님의 주장자법문에
다리가 끊어진 물을 주장자를 짚고 건너가고
달 없는 마을로 주장자를 짚고 돌아간다.
이때 만일 주장자라고 부르면
지옥에 들어가기를 화살과 같이 빨리 들어간다.

扶過斷橋水
伴歸無月村
若喚拄杖子
入地獄如箭


제방의 깊고 얕은 것이
다 손바닥 안에 있다.
하늘을 버티고 땅을 버티어서
곳을 따라 종풍을 떨친다.

諸方深與淺
都在掌握中
撑天幷柱地
隨處振宗風




이와 같이 말한 무문 스님의 말을
분명히 깨달으면
파초 스님의 낙처(落處)를 통달할 것이고,

파초 스님의 낙처를 통달하면
역대조사의 언구(言句)를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조법연(五祖法演) 스님의 송(頌)을 보면

타인(他人)이 주(住)하는 곳에
나는 주(住)하지 아니하고
타인이 행(行)하는 곳에
나는 행(行)하지 아니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 같이
한데 모이기 어려움이 아니라
흑백을 분명히 하기를 요(要)하는 것이다.

他人住處我不住
他人行處我不行
不是與人難共聚
大都緇素要分明









 임제(臨濟) 스님의 회상에 있는 한 스님이
하루는 임제 스님께 묻기를

“빈주(賓主)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니
임제 스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빈주(賓主)가 역연하다.”

고 하였다.

이 법문에 대오(大悟)한
해인신(海印信) 스님이 송(頌)하기를

한 번 ‘할’ 하여 물을 거꾸로 흐르게 하니
역연한 빈주는 가벼이 수작할 수 없도다.
만약 종요로이 참소식을 통한다면
한밤중에 동쪽에서 해가 솟아오르리라.

一喝須敎水逆流
歷然賓主未輕酬
當人若要通消息
半夜扶桑出日頭




 또 중국의 마조 선사(馬祖禪師)는
그의 제자인 원주(院主) 스님이 마조 선사께

“건강이 어떠시냐”
고 안부를 물으니까,

마조 스님이 하시는 말이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이니라”
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마조 스님의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
의 화제(話題)이다.

문무(文武)를 겸비한 설두(雪竇) 스님도
일면불 월면불

(日面佛 月面佛)의 이치를 알기 위해서


설두 스님이 송(頌)하기를

일면불 월면불이여!
오제 삼황은 이 무슨 물건이고.
이십 년 동안 모진 고생을 하면서
그대를 위해서
몇 번이나 창룡굴에 내려갔던고.
굴욕스럽지만 감히 말하노니
눈 밝은 납승일지라도
가볍게 소홀히 여기지 말지어다.

日面佛 月面佛
五帝三皇是何物
二十年來曾苦辛
爲君幾下蒼龍窟
屈堪述
明眼衲僧 莫輕忽

오조법연(五祖法演) 스님도
이 공안에 대하여


두 갈래로 쪽진 머리 올린 계집종이
눈썹을 예쁘게 그리고서
난새 경대 앞에서 아양을 떨면서 하는 말이
‘옥같이 고운 얼굴 비할 데 없다’ 하고
도리어 횃대로 가서 비단옷을 걸치네.




이와 같이 설두 스님이나
오조법연 스님이 분명히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을 송(頌)하였다.

여기에 투철하게 대오(大悟)하면
천하인(天下人)의 설두(舌頭)를
좌단(坐斷)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와 같이 훌륭한 조사의 송에서
깨닫지 못한다면 내 말을 다시 들어 보라.



 예리한 보검은 열사에게 주고
연분홍 화장은 미인에게 준다.

猛劍付與烈士
紅粉分付主人



이와 같이
여러 조사 스님이 말씀하셨지만
아손(兒孫)을 위해서
추태를 부린 것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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