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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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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3-07 14:15 조회1,5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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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서옹 큰스님 법문집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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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27.

꽃이 피었다가 바람 불어 떨어지도다


초목이 파릇파릇 움을 틔우는 봄이
활짝 웃으며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매년 맞이하는 계절이지만
항상 새롭게만 느껴진다.

오늘은 선(禪)과 문화,
그리고 기개(氣槪)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과거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문화 사업에 너무 치중한 나라는
오히려 미개한 나라에게
정복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문화. 학문 등 여러 가지가 더불어 발달해야
나라의 힘도 강해지는 것이지
문화적으로 낙후하면
강대국이 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 과학문명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오늘날,
국가의 힘은 곧 과학력인데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힘이 있어야
강대국이 되는 것이지
옛날과 같이 용기만 있어서는
강대국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개인이나 국가, 민족에게 있어서
문화와 기개는
역사를 이끌어 온, 또 역사를 이끌어 갈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인류의 학명인 호모 사피엔스는
지혜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고(思考)는
사람만이 가진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려는 욕구가 있으며,
그 바탕에서 종교와 철학, 진리를 탐구하는
깊은 학문은 물론, 과학이나 예술, 문화 등
생활의 전반적인 분야에 걸쳐 발전을 해나간다.

그러나 문화적인 면과 기개적인 면이
원만히 결합되어야 골고루 발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너무 문화에 치우쳐서 사회가 발전하다 보면
기개가 부족하여 유약해지기 쉽다.

여기서 기개는
‘의지의 지속적인 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어떤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고 역동하는 정신력이다.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체육을 장려하는 추세인데,
이처럼 체육이나
혹은 나라를 보위하는 군인정신 등이
기개를 발휘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개가
문화를 배제한 채
유연성을 가지지 않고 용기로만 발휘된다면
본래의 건설적인 취지에서
벗어나고 마는 것은 당연하다.

플라톤은 저서 [국가] 에서
철인(哲人)정치를 주장하는 한편
국가를 구성할 때
국가를 방위하는 군인들과
욕망을 추구하는 대중들,
즉 이성. 기개. 욕망의 세 가지 측면이
인간의 특징으로 존재한다고 갈파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플라톤의 입장에서 본 것이고
보통 서양철학에서는
이성과 감성(욕망)의 이원론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쇠(鐵)는 부드러운 동시에 강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드러운 대로,
혹은 단단한 대로 쓸모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강하고 부드러운
그 중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
‘중간’이라는 표현은 어폐(語弊)가 있다.

말하자면
강한 것이라 해서 늘 강하다고 할 수 없으며
또 부드러운 것이라 해서
늘 부드럽다고 만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한 것도 있고 부드러운 것도 있는 것이
인간의 입장에서 본 ‘중(中)’이며,
또 ‘중(中)’이라는 것은
단순히 가운데를 가리키거나
절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강한 차원도 초월하고
부드러운 차원도 초월한 더 높은 차원을 뜻한다.

강(强)과 유(柔),
다시 말해서 기개와 문화가 원융한
화합의 차원에서
국민의 정신을 향상시켜 나갈 때
훌륭한 문화국가를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바이다.

이같이 훌륭하고 차원 높은 문화의 밑바탕은
기개가 원동력이 됨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남용되는 용기는 훌륭한 역사를 창조할 수 없다.

인간의 근본바탕은
종교정신과 통하게 되며
종교를 지향하는 근본바탕에서 나온
기개, 용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우리는 삼일절을 맞이했다.
삼일절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지배당하던 암울한 시대에
우리 민족 스스로 해방되자며
자주독립의 기치를 부르짖은 역사적인 운동이었다.
그때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33인들은
대부분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그 분들은 개인의 생사와 명예를 초월하여
우리 민족의 숭고한 독립을 위해서 앞장섰던 것이다.

입산하기 전 학교 다닐 때에
나는 만해 한용운 선생을 만나 본 일이 있다.

한용운 선생은 독립운동 때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기독교. 천도교 성직자들을
독립운동에 가담토록 앞장서서 교섭한 분이다.

선생에 대한 일화를 말해 보겠다.
그당시 불교계에서는
보성 고등보통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다른 재단으로 경영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조사를 해보니
불교재단에서도 넉넉히 운영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때 한용운 스님과 백양사의 송만암 스님은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
고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한용운 스님은 집을 나설 때
“목숨을 걸고 이 문제를 바로 잡겠다”
는 비장한 각오를 했다고 한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옳은 일에는 생사를 초월하여
용감하게 밀고 나갔던 그 분의 인격에
학생 시절의 나는
참으로 큰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인간의 근본바탕에서 지향하는 의지가
종교적인 경지에 도달하고
그 기개가 살아나서 용기 있게 활약할 때에
참으로 올바른 문화가 형성되며
위대한 역사가 창조되는 것이지
문약하거나 만용에 치우치는 용기는
새 역사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없다.

삼국시대에 백제의 문화는 참으로 찬란했다.
일본에 선진문화를 전해준 것도 백제였으며,
또 현재 일본의 국보급 유물들이
대부분 백제의 문화유산이다.

그렇게 차원 높은 문화를 창조한 나라였지만
점차 나라를 돌보지 않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다가
삼천궁녀를 거느리며
환락을 구가한 의자왕에 이르러서는
기개가 흐트러지고 문약해져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물론 멸망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러한 일면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고구려는 중국 수나라의 2백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등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전쟁을 치른 민족이었다.

당나라와도 싸워야 했고
신라와도 한강 유역을 점령하기 위해
빈번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더욱이 보장왕 2년에는 연개소문이 왕에게
당(唐)에서 도교를 들여오기를 권했다.

이때 고구려의 명승 보덕화상이
국가의 근본사상이며 문화의 주축인 불교를
갑자기 핍박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라고 조언했지만
보장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도교를 들여와 결국,
고구려의 정신문화는 불안정해졌던 것이다.

그 결과 만주벌판에서
우리 민족의 기상을 드높였던 고구려는
기개는 강했으나 멸망하고 말았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정신은
화랑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화랑도는
불교이념을 바탕으로 한 수양단체였기 때문에
신라의 청소년들은 자연스럽게
불교적인 윤리관을 터득할 수 있었다.

화랑의 세속오계 중
살생유택(殺生有擇)의 자비심은
인간의 근본바탕에서 우러나온 종교심이며
임전무퇴(臨戰無退)는
생사를 초월한 불교정신에서 우러나온 용맹심이다.

종교심에 바탕을 둔 문화와 기개가 결합하여
화랑정신을 형성하였고
이것이 후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유교문화만 숭상하고
군인정신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일본의지배를 받아야 할 만큼 기개가 약해졌다.

또 만주로 세력을 확장하며
군국주의로무장한 일본은
마침내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문화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기개만 강하여 결국 패망하고 말았다.

개인적. 국가적. 인간적으로
문무(文武)가 조화되어야 함은
두 말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가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으나
용기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어진 것은 아니다”,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 있는 자는 의심하는 것이 없으며,
용맹스러운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이유이다.

공자는 용기 있는 사람이란
어질고 지혜와 덕,
그리고 용을 갖춘 사람이라고 했던 것이다.

즉 사람은 문화와 기개를 겸해야
완전하고 훌륭한 인격을 갖출 수 있다는 말이다.

불교를 보더라도
부처님과 보살들이
위로는 보리(菩提)와 도(道)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데
목숨을 버리고 용맹스럽게 했다.

중국 임제종의 유명한 자명 대사는
“옛사람이 도를 구하기 위하여
먹지도 않고 잠자지도 아니하였거늘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며
잠이 올 때마다
송곳으로 다리를 찌르면서 공부했다
는 일화가 있다.

또 황벽 스님은 이러한 글을 지었다.

일상의 티끌과 괴로움을
모두 벗어버리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그 고삐를 단단히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할지어다.

한 번 뒤집혀서
찬 것이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매화꽃이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으리오.

자기 본래면목이 확연히 드러나는 글이다.

불교 중에서도
참으로 골수라고 할 수 있는 선(善)은
만물의 근원, 사람의 근본을
절대 부정하고 또 절대 긍정한 그 자리를
죽이고 살리는 자유자재한 경지이다.

그 영성자리, 본래면목 자리는
한 물건도 없으면서
만물이 다 구족(具足)해서 활발하다.

그 자리를 선(禪)에서는
대기대용(大機大用)이라고 한다.
또한 그 자리, 인간의 근본생명체는
무아의 조그마한 나를 초월하고
모든 만물을 표용하여
모든 것이 한 몸, 한 생명체가 되며
거기서 자비심이 우러나와
아무 걸림이 없는
동체대비, 무연 자비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참선이야말로
종교 가운데서 가장 숭고하고
가장 깊은 이난의 경지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참선이야말로
기개를 초월한 초월적인 기개이며
문화를 초월하고 문화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서산 스님은

“굴욕하지도 말고 아만도 갖지말라”
고 했다.

굴욕과 아만이 붙을 수 없는,
아주 진실하고 수수한 그 자리에서
용기 있게 살 수 있는 인간의 근본바탕이
참선자리인 것이다.


선법문을 말하겠다.





 담주(潭州)의
운암담성(雲巖曇晟) 선사가
약산(藥山) 스님을 처음 뵙자

약산 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는고?”

선사가 대답하기를

“백장(白丈) 스님 처소에서 옵니다”

약산 스님이 묻기를

“백장이 무슨 말을 하던가?”

선사가 대답하기를

“어떤 때는 한 구절속에
백 가지 맛이 구족하다 하더이다”

하였다.
약산 스님이 또 묻기를

“짜면 짠 맛이고 싱거우면 싱거운 맛이고,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것은

이 보통 맛이니
어떤 것이 이백 가지 맛이 구족한 구절인가?”

선사가 대답이 없자
약산 스님이 말하기를

“눈앞에 생사를 어찌할 것인가?”

선사가 말하되,

“눈앞에 생사(生死)가 없습니다.”

약산 스님이 묻기를

“삼십 년 동안 백장에게 있었으면서도
속기(俗氣)가 가시지 않았도다”

또 묻기를

“백장사형(白丈師兄)은
다시 무슨 법을 말했는가?”

선사가 말하기를

“어떤 때에는
‘세 글귀 밖에서 알아라,
여섯 글귀 밖에서 알아차려라’ 했습니다”

약산 스님이 또 묻기를

“삼천 리 밖에서
교섭(交涉)할 수 없는 것이 기쁘구나”

하였다.
약산 스님이 다시 묻기를

“또 무슨 법을 설했는가?”

선사가 말하되,

“어떤 때에는 상당법문을 마치시고
대중들이 법당에서 나갈 때에
다시 대중들을 불렀습니다.

대중들이 머리를 돌리자
말하기를

‘이것이 무엇인고?’”

약산 스님이 말하되,

“어찌 진작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하니
선사가 그 말에 깨달았다.


투자청(投子靑) 스님이 송(頌)하기를

천 봉우리 다 다녀도 길[路]이 더욱 높으니
되돌아와서야 옛 구름 세계를 생각하도다.

옛 곡조 선우곡(單于曲)을 즐기어 탐내다가
호가(胡家)의 느린 곡조에 어긋나도다.


내가 여기에 대하여 착어(着語)하겠다.

봄바람 꽃이 피지 아니할 수 없으니
꽃이 피었다가 바람이 불어 떨어지도다.

네가 만일
칭찬하고 나무라는 글귀를 밝히면
착한 인으로
악한 과를 부르지 아니하나니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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