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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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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3-08 06:59 조회1,6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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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서옹 큰스님 법문집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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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28.

선(禪)과 문화


현대는
새로운 세계문화를
창조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시대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여
세계를 휩쓸고 있는 과학문명을
새로운 원리에 입각하여 다시 창조하지 않으면
과학문명 자체의 몰락으로 인한
인류의 생존과
문화의 전반적인 파멸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과학적이라는 것은
만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인데
객관적이라는 것은
만물 자체에 즉(卽)해서 보는 것으로 만물을 보되
실험의 방법을 통해서 실증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주관에 의해서 시시로 변화하지 않고
그 자체 법칙을 조차서
어느 때 어는 곳에서든지 반복하게 된다.

이 반복은 동일한 과정을 경과해서
동일한 결과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니
과학법칙의 본질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과학에 의해서 보는 자연계는
기계적 법칙이 지배하는 물질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연과학에서는
생물이 진화해서 인간으로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도 생물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은 인간의 작용을
보편적 타당을 주장하는
과학법칙으로 연구함으로써
인간도 기계적 법칙이 지배하는 물질이 되어 버린다.

자연과학에서는
인간을 생물로,
생물에서 다시 무생물 차원으로 다루는
세계관을 형성하기 때문에
인간성에 대해서는
무관심(無關心),
무관계(無關係)한 것으로 취급하기 쉽다.

이러한 과학문명의 병폐로 인하여
오늘날 인간은 인도(人道)를 상실하여
금수와 같은
본능적 욕망에만 빠져 타락함으로써
인류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과학에서 만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세계는
물질이라는
일종의 추상적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 현실에서 체험하는 세계는
구체적으로
현금(現今)에 생생(生生)히 있는 세계이다.

과학적 ‘지(知)’도
인간의 ‘지(知)’의 일부인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의미,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도 알고자 하는데,
이 또한 인간의 ‘지적(知的)’ 활동이라고 하겠다.

이 활동을 철저히 하면
세계와 자기 자신의
절대적 ‘무(無)’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구경(究竟)의 ‘무(無)’에서
대사일번(大死一番)하여
다시 대활현전(大活現前)해서
인간과 세계를
근원적 전체적으로 확철대오(廓撤大悟)하는 것,
이것이 종교적 실존이며,
선(禪)에서는 본래면목이라고 한다.

이 본래면목은 일상 체험하는 사실보다
말할 수 없이 현격해서
구경적(究竟的)으로 진실하며, ‘참’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일상 경험의 사실과 과학의 진리성을 초월하여
거기서 다시 대사일번. 대활현전 하면
일상 경험의 사실과 과학의 세계가
본래면목의 작용이 되는 것이다.

문화는 인간을 만드는 활동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의 지견(知見). 정조(情操).
의지(意志)를 개발하여
높은 성격을 형성하는 활동이라 하겠다.

국가는 다만 존재한다는 데에 그치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존재이유.
존재의의를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의의를 지닌다는 것은
국가를 형성하는 문화를 의미한다.

정치. 경제는
국가의 존재와 국민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문화는 국가의 존재에 이유를 부여하고
국민생존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와 경제는
구경적으로는 문화 활동을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다만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기 존재에 의의를 갖지 못하는 국민은
자기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고
하등의 사명도 자각하지 못하는 국민이 되어서
의기(意氣)를 상실하여
드디어 자기 존재를 확보, 견지(堅持)하려는
의욕마저 상실하게 되는 것이며
필경에는
위미(萎靡)한 국민으로 되어 버리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것은 바로 정신을 상실하게 됨을 의미한다.

정신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공소(空疎)한
‘관념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지로는 정신력은
존재 자체를 지탱하는 가장 근원적 계기라 하겠다.

활력을 쏟아 넣을 목표를 갖지 못하고
정신력을 상실한 국민은
망국(亡國)을 면할 수 없는 국민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정신력은
자기 존재에 의의를 갖는 데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존재함으로써
존재 의의도 생각할 수 있는 반면에
도리어 존재 의의를 자각하는 것이
존재의 기능을 지탱해 준다고 하겠다.

우리 한국은 현대에 있어서
문화적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종합이라고 하겠고,
장래에 새로운 세계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이것은 또한 현지구촌에 있어서
세계문화의 큰 흐름이기도 하다.

현대에서
세계문화의 흐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완성을 위한 깊은 바탕에서
세계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동양의 심오한 전통적 문화를
현실에 다시 살려
그 바탕에서 과학문명을 형성하는 데에
미래 세계문화 창조의
진정한 활로(活路)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본래 의미는
인간 각자가 본질적으로
자기를 형성하는 데에 있으니
참으로 ‘인간’을 완성하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또한 선(禪)은 인간의 본질을
철저히 규명해서
초월의 차원인 자기근원(自己根源)에
환귀(還歸)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과 문화는 전혀 차원이 다르면서도
인간 각자가 인간차원을 초월해서
자기 자신의 근원에 환귀한다.

따라서 선의 경지는
선과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를
선이 현성(現成)한 것으로,
나아가 이것이
선문화(禪文化)를 형성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선(禪)은
시대를 전적으로 높이 초월하는 일면(一面)과
시대 현실의 근저(根底)까지 파고 들어가서
구경적으로 해결하는 일면의 그 양면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절대대도(絶對大道)를 성취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선의 생명이
여기에 살아 있다는 뜻이다.

선문화를 창조한다는 것은
선을 초월한 면과
그 초월한 바탕 위에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면을
동시에 구족(具足)하여
선의 생명을 생생히 살리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선문화야말로 위대하여
그 어떤 것보다도 높고 깊으며 넓고 진지하다.

이것이 영원히
활발발(活潑潑) 무애자재(無碍自在)하게
창조하는 선문화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는 일방(一方)에서는
세계경제와 세계정치의 근저에
깊은 혼미(昏迷)가 있고
타방(他方)에서는
전면적 대중화 진행에 의한
부박(浮薄)한 세계문화의 퇴락현상이 있어서
이대로 가면 인류는 멸망하게 될
위기의 시대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경제와 정치,
또는 이것과 결부한 여러 가지 ‘주의(主義)’의

이데올로기 등의 영역을 초월한 장(場),
인간의 근저에 있는 보편적 인간의
자기 자신의 근원을 자각한 장(場)에서
경제와 정치, 사상과 종교,
국가와 계급 그리고 인종을 초월해서
다시 현실에 살아나와
여러 가지를 종합. 상통(相通).
조화 하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인간의 근원을 자각한 선이
미래 문화 창조의 근원이 되어서
영원히 새로운 세계문화를
창조해야만 될 시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대에 있어서 선문화(禪文化)는
독탈무의(獨脫無依) 무주무상(無主無相)의
진실한 자기를 자각하여 더욱더 복잡화하여
내적. 외적으로 전박(纏縛)이 된
전 인류를 해탈케 하는 동시에
아무 것에나 집착함이 없이
무애자재(無碍自在)하게 전 인류를 위해서
세계와 역사를 형성하는 데에
위대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선문화를 세계적으로 창조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세계문화사적 사명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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