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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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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3-11 05:50 조회1,6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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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서옹 큰스님 법문집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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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31.

출가행은 버리고 떠남


오늘 무더운 날씨임에도
원로(元老) 스님과 사부대중
그리고 내외귀빈 여러분께서
이 자리를 빛내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부덕한 산승(山僧)이
종단의 막중한 소임을 지게 된 것을
심히 송구스럽게 생각 하는 바이다.

다만 삼보(三寶)의 가호와 여러분의 성원을 믿고
오늘 산승이 이런 자리에 나서게 된 것임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다.

오늘날 우리들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 아래 살아가고 있다.

물질과 권력 만능의 풍조 속에서
인간은 한낱 물량(物量)과
욕망의 종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일찍이 인간만이 지닐 수 있었던
고귀한 그 덕성은
날이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며
사람이 사람을 못 믿어하고
이웃이 이웃을 두려워하게 된 이 마당에
인간은 이제
만물 가운데서 신령스런 존재라 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이 오늘처럼
타락해 버린 요인을 살펴보면

첫째는
물질에 현혹되어 외부 세계에만 눈을 판 나머지
인간 스스로가 인간의 긍지를 포기해 버린 점이고,

둘째는
도시화와 산업화를 향해
외곬으로 치닫는 구조적인 모순에서
온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 스스로의 자각(自覺)이
선행(先行)되지 않고서는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할 길이 없다.

구조적인 모순 또한
멀어 버린 그 눈을 다시 뜨지 않고서는
구제의 길이 없다.

이와 같은 상황 아래서
자각과 각타(覺他)의 종교인
불교가 수행할 사명은 실로 말할 수 없이 막중하다.

한국불교는
1,600년의 역사를 지닌 종교답게
일찍이 이나라와 겨레에 밝은 등불의 구실을 해왔다.

뚜렷한 지표가 되어 온
겨레의 정신적인 귀의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교단의 현실은 어떠한가?

내 자신도 할 말이 없다.
불조(佛祖)앞에 그리고 일반대중 앞에
참괴의 염(念)을 금할 길 없다.
종교의 기능인 사회정화는 차치하고
자체정화도 못하여
내외의 빈축을 사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닌가.

청정(淸淨)한 승가(僧伽)의 기능은
오로지 출가(出家)의 행(行)에 근원을 두는 것이며

출가란
‘버리고 떠남’이다.

비리와 모순과 갈등을 버리고
본질적인 세계로 지향하는 행위인 것이다.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
이해와 사랑으로써 화합하고 정진하는 것이
바로 출가행(出家行)인 것이다.

출가행은 또한
대승보살정신(大乘菩薩精神)에 이어진다.

나 개인보다는
나와 관계된 수많은 이웃과 공동체와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고통 받고 있은 이웃들이 너무 많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자비는
곧 모든 종교의 사회적인 기능이다.

우리 이웃이 신음하며 괴로워할 때
우리는 결코 편할 수가 없다.

전체가 곧 하나요, 하나가 곧 전체에 이어진다는
불타(佛陀)의 가르침은
모든 존재의 실상(實相)인 까닭이다.

한국불교는
근래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이웃에 대해서
무슨 일을 해왔는가?

어떻게 이해하고 얼마나 베풀어 왔는가?
다 같이 돌이켜 보아야 할 절실한 과제이다.

종교는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서만
사회에 활기와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창조적인 활동이 곧 청정한 출가행인 것이다.
이와 같이 출가행을 거쳐서
우리는 어디에도 거리낌 없는
당당한 참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불교 교단은 버릴 것이 너무 많다.

그중에도 독선과 아집
그리고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버려야 할 때다.

단결은
단순한 구호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이기적인 일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역사 안에있는 자신을 인식할 때
그 힘은 저절로 커다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사회정의의 실현을 통해서
종교의 진리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출가대중 여러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출가행자가 된 것일까?

세속적인 명리(名利)를 위해서일까?
재물을 탐해서일까?

우리가 출가한 것은 명리도, 재물도,
그 어떤 세속적인 것을 구해서도 아님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출가한 근본 뜻은
오로지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아
내 자신을 구제하고 사회를 정화하기 위해서다.

재가신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불교에 귀의하여 신도가 되었는가?

세속적인 명리와 재물을 탐해서인가?
출가대중을 비방하는 일로써
정진(精進)을 삼기 위해서인가?

물론 아닐 것이다.
여러분이 불교에 귀의한 뜻도
출가대중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출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지않으면 안 된다.
재가신도
본래의 입장으로 돌아가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이 땅에서
부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대신 물려받았다.

그동안 우리 교단이
잃어버린 공신력을 되찾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이 길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멀어 버린 눈을 다시 뜰 수 없고
빗나간 세상을 구제할 길이 없다.

우리는 크게 버려야 한다.
크게 얻어야 한다.
그래서 크게 베풀어야 한다.


필경에
어떠한 것이 차별 없는 참사람인고?

사자굴 가운데 다른 짐승이 없고
코끼리 가는 곳에는 여우 자취가 끊어졌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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