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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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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3-15 07:26 조회1,6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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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서옹 큰스님 법문집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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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34.

뜬구름은 날아서 왔다 갔다 하도다


추위가 며칠간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렇게 춥다는 것은
봄이 가까이 왔다는 소식이기도 하다.

가령 장거리를 달리는 마라톤 선수가
골인 직전의 힘겨운 막바지 고비를 넘겨야
비로소 골인하는 순간을 맞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에는
쉬운 일, 즐거운 일, 어려운 일 등이
통상 따르게 마련인데
고통이나 어려운 일에 직면해서는
보통 낙담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엄동설한의 혹한이 지나야
비로소 따뜻한 봄날이 오듯이
삶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은
겨우내 언 땅이 녹는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고비를 잘 극복해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았듯이
성공한 사람들 역시
숱한 실패를 겪고 그것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우리 민족은 그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앞으로도 여러 가지 난관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사를
창조해야 하는 사명이 있으며
또한 훌륭한 과제를 갖고 있음에
자부심을 가지고 잘 극복해야 한다.

이 시간에는 인간의 깊은 참모습, 불법 그 자리,
이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생생히 살아 나와
모든 문제를 해결했으며,
어떻게 인류 역사와 문화를
창조했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겠다.

오늘날은 옛날과 달라
종교가 세상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아니며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었지만,
옛날에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였다.

우리나라도 단군 시대에는
정치가 곧 종교인
제정일치(祭政一致) 정신으로
역사와 문화를 이룩했다.

부여가 만주에 도읍한 곳의 지명이
‘굿벌’이라고 한다.

그 시대의 종교의식이 굿 하는 것이 아닐까?

굿벌은 굿하는 장소가
옛날의 도읍지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일본의 제1대 천황이 도읍한 곳이 ‘가시하라’는
한국말의 ‘굿벌’과 어원(語原)이 같다고 한다.

그러니까
백제 사람이 일본에 가서
정치를 하고 문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 어원이 같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옛날에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 되어 역사를 창조했다.
그러한 종교를 민족종교라고 한다.

고대 단군 시대도
민족종교를 행한 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유태인의 민족신인
여호와를 믿는 유태교도 민족종교라고 할 수 있다.

유태교는
예수 이후에 기독교와 천주교라는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했다.

세계종교는
세계종교로 발달하기 이전의
민족종교를 바탕으로 그 민족성을 초월해서
전 인류의 차원에서
보편적인 진리를 가지고 이루어지게 된다.

민족종교가
그 민족 고유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라면
세계종교는
세계성과 보편성을 추구하여
누구나 진리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진리라고 하겠다.

세계종교는 개인을 구제하는 것이
첫째 목적으로 내면적으로 깊이 파고들어
인간의 근본바탕 참모습을 완전히 해결한 것이다.

민족종교는
민족의 외면적인 현세 이익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세계종교는
개인이 교조(敎祖)이다.
가령 불교는
부처님이 인간의 깊은 경지를 깨달아 교조가 되었고,
기독교는
예수님 개인이 교조이다.

그러나 민족종교는
민족이 생활하는 가운데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지 교조가 없다.

그밖에 불교의 팔만대장경,
기독교의 성경, 이슬람교의 코란 등
세계종교에는 경전이 있지만
민족종교에는 경전이 없다.

세계종교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집단종교를 형성하지만
민족종교는
그 민족 전체가 민족종교의 신봉자이기 때문에
교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중세기에 들어와서
민족종교를 초월해 이루어진 세계종교가
정치 및 문화의 바탕이 된다.

그리하여 종교는 주인이 되고,
종교의 영향을 받은 정치는
종교에 종속되는 역사를 만들었다.

학문도 마찬가지이다.
서양학문의 중심은 신학이었고,
동양에서는 한자로 된 불경을 공부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성해
인간을 초월한 천도(天道)와 성인(聖人)을 주장했다.

이 모두가 일종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종교와 학문이
한 테두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분할된 영토는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왕이 영토를 통일하여
절대복종, 절대지배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봉건주의적인 통일국가를 이룩했다.

그런데 이처럼
국가의 바탕이 된 종교가
여러 가지 진리와 모순되자
신(神)에 종속되어 있던
중세기의 암흑시대에서 벗어나자고 부르짖는
계몽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성을 각성하고 인간의 권리를 찾아
종교에서 정치도 분리하고
학문도 독립시켜 연구하게 되었다.

더욱이 1662년 영국에서
자연과학학회인
로열소사이어티를 조직한 것을 필두로
성경을 연구하던 지식인들이
과학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의 과학문명을 이룩했다.

어쨌든 역사는 흘러내려 오면서
인간주의가 성행하여
인간의 자유를 부르짖게 되었으며,
이성적으로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자는
민주주의가 발달하여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정치와 더불어
자본주의가 발달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봉건주의시대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계급을 정해 놓아,
같은 인간임에도
평등한 권리를 갖지 못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모든 개인이 평등하고 자유스럽게 사는 것이
진리가 되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가 발달하여
자본주의로 치달으면서
빈부의 격차가 생기게 되자
다시 평등과 민주화를 부르짖게 되었던 것이다.

가난하면 거기에 끄달려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없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주의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마르크스주의는 개인을 무시하고
사회 전체를 절대로 하며 국가관이 없다.

오늘날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되어 있는 상황이다.

불교의 근본바탕 차원에서 보면
모든 보편적 하나와 개체가 둘이 아닌 하나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개체를 절대로 하고
사회주의는 전체를 위주로 하는 등
둘 다 원만한 전체가 아니라 한쪽만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라도
개인의 극단적인 자유 표출로 혼란이 오게 되면
국가와 사회의 차원에서 개인을 통제해야만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북이 대립되어 있어
개인과 개체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으며
국가 민족적 차원에서 통제를 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본래 마르크스의 이론에는 국가관이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나라간의 대립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국가의 힘을 강력하게 발휘하여
제국주의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오늘날에는
국가가 절대주권을 갖게 되어
국가 위에 국가를 지배하는 것이 없으므로
국가 간의 알력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할 길이 없다.

국가 이기주의로 인해 발발한 것이 세계대전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스의 사상을 민족적인 사회주의라고 한다.

마르크스는 민족주의적인 이념이 없지만
나치스는
자기 민족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심으로
전쟁종주국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대로 나간다면
제 3차 세계대전이
언제 일어날지 가늠할 수 없을 지경이 될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세계 문제는
어느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안되므로
개인과 국가와 보편적인 하나의 바탕인 세계성,
이 세 가지를
어떻게 원만히 해결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공산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고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이념에는 국가관이 없지만
현실에서는 국가를 필요로 한다는 데에
그 모순이 있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혼란이 온다면
국가가 유지될 수 없으므로
국가의 입장에서
개인의 자유를 통제해야 한다는데
역시 모순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과 국가, 세계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하다.

불법에서 보면
개인을 초월하고 부정한 그 바탕에서
다시 개인이 살아난다.
또 국가를 초월하고,
국가를 초월한 세계성의 바탕에서
세계는 하나라는 것도 초월해서,
그 하나라는 바탕에서
개인과 국가와 세계를 전부 초월하고 부정해서
다시
개인. 국가.세계가 긍정되어 조화를 이루는
변증법적인 원리가 불법에 있다.

불법이야말로
개인의 인생 문제와
국가의 정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으며
평화스러운
세계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올바른 종교다.

그러면 지금까지 말한
‘인간을 완전히 해결한 불법,
선(禪)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말하겠다.


 어떤 스님이 운문(雲門) 스님에게 물었다.

“학인이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아니해도
허물이 있습니까?”

운문 스님이 이르시되,

“수미산이니라.”


천동각(天童覺) 스님이 송(頌)하기를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아니한데
수미산이라 함이여
소양(韶陽)의 법보시는 뜻이 인색하지 않도다.

바로 긍정함에
두 손으로 다 나누어주고 헤아려 상량하면
천 길이나 높아서 붙잡을 수 없도다.

푸른 바다는 넓고 흰 구름은 한가하니
터럭만큼도 그 사이에 집착하지 말라.

가짜 닭울음소리는 나를 속이지 못하나니
어름하게
관문을 지나가도록 놓아두지 않도다.


내가 여기에 대하여 착어(着語)하겠다.

푸른 산은 원래 동하지 아니하고
뜬구름은 날아서 왔다 갔다 하도다.

알겠는가?

천 봉우리는 오는 데 길이 있고
팔방은 청정해서 티끌이 없도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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