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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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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3-16 10:14 조회1,6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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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서옹 큰스님 법문집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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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35.

바다 밑 진흙소는 밤에 자주 소리 지르도다


지난 4월 초에 법문차
제주도에 며칠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제주도는 세계 10대 관광지의 하나로
사람의 손길에 훼손되지 않은
천연의 경관을 그대로 갖추고 있어
인공의 조형미에서 느낄 수 없는
신선하고 생명력 있는
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유의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는 국가야말로
끝까지 발전할 수 있다.

바야흐로 태평양 시대의 도래에 즈음하여
그 중심 역할을 담당하게 될
중국, 일본, 한국은
대승불교의 동양 전통이 잘 살아 있는 나라이다.

특히 제주도는
삼국의 중심에 해당하는 지역이니만큼
앞으로 세계 각지의
문명과 사람들이 밀집하게 될 것이다.

이때에
제주도의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지 못한다면
외래 사조에 오히려 말살되고마는
역현상을 빚을지도 모른다.

외래문화를 적절히 수용하여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근간으로 재창조한다면
제주도는 그야말로 태평양 시대의 중심으로,
전 세계의 중심으로
훌륭한 문화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 인류와 역사에
크게 이바지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주도민이나 국가의 차원에서 탈피하여
범세계적인 제주도가 되도록 구상해야 한다.

과거에 제주도 유배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제는 절해고도(絶海孤島)의 그 땅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세계의 역사는 이와 같이 격변하고 있으며
과거보다 변화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과학문명이라는 실용적이며
보편적인 기술이 세계 각처에 보급되어
지구를 하나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세계가
완전히 하나의 문화권으로
통일된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문화가 한 곳에 집약되어
그 지역의 특징만을 단편적으로 나타낸 데 비해

요즘의 문화는
과학문명의 영향으로 빠른 속도로
지구촌의 곳곳에 퍼져
문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전달속도가 빠른 만큼
그 파급효과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과학문명은 곧 서양문명이라고 여기는데
-그렇다고 동양에
과학이 부재(不在)했다는 것은 아니다 -
세계로 퍼져 나간 과학문명은
욕망에 기인한 그 근본바탕 때문에
오늘날 우려하고 있는
인간성 상실의 문제로까지 비약되었던 것이다.

욕망은 필연적으로 투쟁을 수반하므로
제1,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그 불씨가 아직 꺼지지도 않은 채
또 다른 전쟁의 위험을 부르고 있다.

물론 전쟁의 종식을 위해
각국에서 자구책을 마련하며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자국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얼마나 양보하며
세계 평화를 위해 앞장설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신문의 외신란을 보면
거의 매일 바다에서, 육지에서
자국의 자존심과 이득을 위해
총을 겨누며 폭탄을 투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살육의 전쟁만 없을 뿐
휴전선을 마주보며 전력을 증강하고 있으니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태는
우리 국민에게 전쟁의 우려를 항상 안겨 주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지전은
전면전의 위험을 안고 있는데,
만에 하나라도
제 3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여
핵무기가 사용된다면
엄청난 후유증은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지구 역사에는
‘최후 빙하기’라는 자연현상으로
모든 생물이 멸종해 버린 재해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인간 스스로가
그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겉으로는 인류 평화를 부르짖고 있으면서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모색하지 않는 것은
반(反)평화. 반(反)행복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와 같이 현대 문명은
인간성 상실과 파멸의 불행을 수반한
극심한 병폐를 낳았으니
그 원인은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의 내면이 황폐하기 때문이다.

고도로 발달한 서양문명, 과학문명의 이면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신체 내부에
병소가 있음으로 해서
급기야는 생명을 상실하는 것처럼
정신원리가
옳게 밑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지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 서구사회에 유행하듯이
확산되고 있는 선(禪) 인구를 보면,
물론 동양문화의 전이(轉移)라는
단순한 문화유출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동양의 정신문화를 희구할 수밖에 없는
서양문명의 근본적인 결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20세기 초에
서양문물. 서양사상을 무분별하게 수용하였던
동양의 저개발 경제 후진국의 예와는
다른 문화수용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문명의 태동은
인류에게 보탬을 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앞에서도 여러 번 말했지만
중세기 이후 서양종교의 진리가
모순투성이임이 밝혀지자
과학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과학문명의 원리바탕이
참다운 인간진리를 외면한 채
너무 외형적으로만 비대해짐으로써
상대적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는
공동(空洞)현상을 초래하게 되었다.

더욱이 근대에 들어와
이성철학을 비판하고 욕망철학이 대두됨으로써
과학문명의 근본바탕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과학문명이 인류에게 공헌한 바는
실로 훌륭하고 지대하다.

과학의 덕택으로 달을 탐사하였으며
우주를 탐구하여 인간의 시야를 확대시켰고
6억 년 전의 세균화석을 다시 생명체로 재현하는
놀라운 기술의 진보를 이룩하였다.

이처럼 과학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으며
모순된 사고체계를 규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과학문명의 병폐를 깨닫고
인간의 참다운 자기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 인간이 살아온 역사를 간추려서 잠깐 말하겠다.

원시시대에는
모든 것의 발전 속도가 굉장히 느렸다.
이때에는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대 자연과 세계가
저절로 한 덩어리가 되어
인간은 돌이나 나무 등의 무정물(無情物)과
동물, 도깨비 등과도
서로 대등한 차원에서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인간도
대 자연의 일부라고 인식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가 날로 발전하다 보니
의식이 세분되고
‘나’, ‘너’ 라는 대립관계가 생겼다.
또 서로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집단이 생겨나고
지배계층과 피지배 계층으로 분리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수의 피지배층이
노동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소수의 지배층은
학문, 예술, 진리를 참구하는 데에
힘을 기울이며
여유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이 되풀이될수록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지식, 문화 수준은
많은 차이가 나게 되어
피지배층의 삶은
지배층을 위한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러 방면에서 월등한 지배자들은
아만(我慢)이 생겨 방종하며 피지배자들을 멸시했다.

어느 곳에서나 공정하고 공평할 때는
서로 화합이 잘 되고 마음이 잘 통하지만
불공평한 곳에는 분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피지배층들이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며 불평을 토로하게 되자
지위를 보존하려는 지배층은
힘으로 억압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억압은
그 순간을 넘기는 데에는 효과적이겠지만
사람의 인지(人智)가 발달할수록
유화(柔和)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일방적인 무력이나 억압이 만연된 사회는
결국 해체되고 만다는 것을
세계 역사는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사를 보면,
국가 내부적으로 민중들의 불평이 높거나
여타 문제가 발생하면
지배층에서는 외국과 전쟁을 일으켜
내란을 멈추게 하는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기도 한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또 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복구하는 동안
불평의 소리는 없어질 수박에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
민중을 향락에 빠뜨려서
시비(是非)를 판별하는 이성을 마비시키며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데
이러한 정책은 특히 서양사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한편 홍수, 지진, 가뭄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생활이 어려워졌을 때
오히려
인간에게는 다시 일어나야겠다는
강한 원력이 작용하여
전보다 더욱 번영된 삶을 약속할 수 있다.

그러나 물질이 풍부하고 살기 좋을수록
인간은 의미를 망각하고 삶의 목적을 상실한다.

그래서 물질적인 외형에 치우쳐 발전된 문명은
종국에는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인류의 여러 가지 역사 흐름을 근
본적으로, 전체적으로 비판하여 진리를 밝혀 주고,
인간의 근본을 초월해서
다시 인간관의 입장으로 전환하여
사람의 살아갈 지표를 정립해 주어야
참으로 훌륭한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종교는 세간사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여
진리탐구에 만 열중했다.

물론 종교인이
정치. 사회 문제에 깊이 관여해서도 안 되겠지만
세간과 출세간을 구별한다면
‘중생무변 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의 자비상이 구현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
학자는 학자로서, 또 사회인은사회인으로서
임무를 다하되
종교를 바탕으로,
부처님의 자비를 바탕으로 새 역사를 창조할 때에
가장 이상적인 세계,
즉 불국토(佛國土)가 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는 불행히도
과학만능주의에 종교가 뒷전으로 밀려
종교가 무력해진 시대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과거의 종교는 소수의 지배층에만 허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과학문명의 혜택으로
점차 노동에 할애하던 시간이 적어지니
모든 대중이
참다운 진리를 구하고 수행하는
참종교 운동을 통하여
세기말적인 인류의 위기를 구하는 데 앞장서야
인류의 평화와 행복이
비로소 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성하여
인간의 진리, 참다운 인간상,
인간의 참다운 실존을 해결한 불법을 바탕으로
행복한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다운 인간상을 밝힌 선법문을 하나 들겠다.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에게 물었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 데
그 하나는 어는 곳으로 돌아갑니까?”

조주 스님이 이르시되,

“내가 청주(靑州)에 있을 적에
장삼 한 벌을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七斤]이다.”


설두(雪竇) 스님이 頌하기를

까다롭게 물어서
일찍이 늙어 오래된 송곳을 건드렸으나
일곱 근 베 장삼을 몇 사람이 아는가?

지금의 서호(西湖)에다 던져 버리니
아래 실은 맑은 바람 누구에게 전해 줄까.


내가 여기에 대하여 착어(着語)하겠다.

돌계집[石女]이 베를 짜니
먼 허공에 소리 내고
바다 밑 진흙소는
밤에 자주 소리 지르도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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