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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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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3-17 10:12 조회1,6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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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서옹 큰스님 법문집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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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36.

산이 가리고
바위가 막혀 길이 없는 줄 알았더니


인간의 기원은
광물적인 생명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
광물은 생명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등 물리학의 경지에 깊이 들어가면
물질과 생명체는 분리할 수 없으므로
광물이 곧 생명체와 통한다고 한다.

광물체인 무기물이
유기적인 식물 생물체로 진화하고,
거기서 더욱 진화하여
동물 생물체로 발전하며,
또 더욱 진화의 단계를 거쳐
감수성과 분별의식, 즉 이성을 자각하게 된다.

그런데 옳다. 그르다, 참이다. 거짓이다,
선하다. 악하다, 아름답다. 추하다 등의
분별하는 의식, 즉 지성은 인간에게만 있다.

이러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문명을 이룩했고,
또 오늘의 과학문명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학문명을 이룩한
인간의 지성을 깊이 비판하면
절대모순의 허구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삶을 추구하는 인간일지라도
결국은 죽음에 직면하게 되며,
더 없는 참[眞]을 구한다고 할지라도
거짓을 면할 수 없다.

오늘날 불안의 철학, 절망의 철학 등
실존철학이 등장하게 된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의 상황을 초월하여
영원한 인간의 근본생명체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또한 인간의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종교의 절대경지가 있다.

이렇듯 인간은
원초적인 광물 생명체에서
종교의 경지까지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지성과 감성으로 나눌 수가 있다.

지성은
모든 것을 고정시켜서 분별하며,
불변한다고 믿고 사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그러나 감성은
고정돼 있지 않고 변화하며
감성에 의한 인간의 마음작용은 창조적이다.

지성이 직선적인 반면에 감성은 곡선적이다.

우리나라 도자기가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데 비하여
일본 도자기는 직선의 딱딱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일본인의 성품은
지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한국인의 특징은 감성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하여
한국인의 지성이 일본인보다 못 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특징이 곡선적이며 감성적인 만큼,
영(靈)적으로 깊이가 있어서 창조적이라는 말이다.

예전에 일본에 있을 때
자그마한 탁자를 만들려고 목수를 부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일본인 목수는
작은 탁자를 하나 만드는데도
먼저 잣대로 재가며 설계를 한다.
그러므로 만드는 과정에서도 실수가 없다.
그러나 한국인 목수는
대궐 같은 큰 건물을 짓는 데도
잣대와 먹줄, 두 가지만 가지고 지어낸다.

악보다 그러하다.
일본인은 악보를 만들고
거기에 맞추어 음악을 하는 반면,
한국 사람은 악보도 없이
그냥 전수하여 부르지만 천하 명창이 나온다.

일본인의 모방능력은 강하지만
우리 민족만큼 창조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지성적이거나 감성적인 성품은
그 나라 국민의 민족성을 대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성이 정(靜)이라면
감성은 동(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감성이 자유자재하게 활동한다면,
지성은 정적이면서
규칙적이고 규율을 맞추는 것이
그 특색이기 때문이다.

한편 인간의 정신작용에서
우리의 마음자리, 즉 정신세계가 주관적이라면
그 대상인 공간,
물질세계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술은
주관과 객관을 원융하게 융합하여 창조한다.

인간에게는
근본적으로 훌륭한 능력이 있어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까지 이르려고 하는
힘찬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 힘찬 생명력의 발동을
인간은 정체되어 있기보다는
더욱 훌륭해지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함으로써
최고경지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래서 객관과 주관이
서로 원융하게 융합하는 예술은
보다 자유스럽고도 완벽한 것을
만들어 보자는 의지에서 발동한
인간 본래의 자연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지가 담겨진 예술품에는
그 시대의 사상과 고뇌가 투영되어 있으며,
인간 생명의 깊은 심층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에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동시에
미래 창조의 생명력을 포함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의 깊은 바탕은 서로 통하지만
그 표현은 동. 서양이 다르다.

동양인은
인간의 정신적인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서양 사람은
밖으로 드러나는
물질세계의 객관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예를 들어
중국의 한자는 글자 모양이
바로 그 뜻을 표현하여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총체적인 문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성적이며 직관적이다.

그런데 서양문자는
표음문자(表音文字)여서 추상적이고 기계적이다.

동. 서양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문자에도
그러한 특색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이후 서양에서 개발된 과학물질문명,
이것 또한 인간의 생명력이 무시된 채
추상적이고 기계적이어서
무미건조 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 역시
과학 물질문명에 시달려서 정감이 없으며
그로 인한 정서적인 불안을 느꼈기 때문에
그 후로 낭만주의 등
인간의 감성을 중시하는 사조(思潮)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에 비해 동양은
내면적이고 감성이 풍부하여
생생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최근 서양에서는
동양적인 것을 희구하는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동양의 훌륭한 생명력의 원리를
개발해야겠다는 풍조가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동양은
근대화를 위해 서양의 과학문명을 받아들였고
그러는 가운데
기계문명의 편리함과 더불어
병폐까지 흡수하였던 것이다.

요즈음 범람하는 비디오 문화는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해
의식을 저열(低劣)하게 만드는
저급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훌륭한 심층을 개발하려는 작업을 통해
삿된 욕망을 극복하고 훌륭한 예술,
나아가 훌륭한 역사를 창조하려고 노력한다면
인간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까지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흐르는 물이 썩지 않듯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더욱 완전함을 지향하려는 인간의 생명체는
어디든지 걸리지 아니하고 계속 흘러가기 때문이다.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종교는 학문적으로
‘이것이다’라고 정의하여 한정시키면
그것은 이미 생명체가 아니다.

정체하는 것은 곧 생명을 상실하는 것이며
생생한 생명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
내가 말한 이 자리,
여러분이 듣고 보고 있는 바로 그 자리인 것이다.

참으로
자유스럽게 창조생활을 하는 것이
참 종교요,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우리가 스스로 지니고 있는
인간 심층의 아름답고 훌륭한 인간성 마저도
초월한 그 자리를 개발하여,
참다운 근원적인 생명체,
그 주체성을 잘살려서 삶을 살고자 할 때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그 자리가 바로 선(禪)의 자리이다.


선법문을 전하겠다.


 어떤 스님이 대룡(大龍) 스님에게 물었다.

“색신(色身:육신)은 부서지고 없어진다.
어떤 것이 더 견고한 법신(法身)입니까?”

대룡 스님이 이르시되,

“산에 꽃이 피어서 비단 같고
개울물은 맑아서 쪽빛과 같도다.”


설두(雪竇) 스님이 송(頌)하기를

물을 줄도 일찍이 모르는데
대답해도 도리어 알지 못하도다.

달은 차가운데 바람은 높고
묵은 바위 곁에 찬 노송나무로다.

우습도다.
길에서 도를 통달한 사람을 만남에
말하거나 묵묵함으로 대하지 않도다.

손에 백옥 채찍을 잡고
여주(驪珠)를 다 쳐부수는구나.

쳐부수지 아니하면
구슬에 티만 더함이여.

나라에 헌장이 있으니
삼천조목(三千條目)의 죄로다.


내가 여기에 대하여 착어(着語)하겠다.

산이 가리고 바위에 막혀

길이 없는 줄 알았더니
길이 돌고 개울이 뚫리어

마을이 따로 있도다.

산마루에

외마디 피리 소리 들리나니
자욱한 연기, 지는 해에

황혼마저 감도는구나.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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