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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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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3-29 09:03 조회1,6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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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서옹 큰스님 법문집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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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47.

좋은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 달린다.


부처님 말씀 중에
“불법난봉(佛法難逢)
인생난득(人生難得)” 이라는 구절이 있다.

부처님 법을 만나기도 매우 어려운 것이요,
사람의 몸으로 태어남도 또한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즈음
중. 고등학생들의 잇단 자살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심지어 이제 막 피어나는 새싹과도 같은
초등학생들의 자살사건이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갑자기 불거져 나온 문제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찍부터 예감하고 우려하고 있던
현대 문명의 병폐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는
우리보다 앞서 선진문명을 자랑하며,
사회복지를 폭넓게 실현하고 있는 국가에서
이미 발생해 온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우리사회가 발전하고
물질적으로도 풍족하게 되진
이제는 우리의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과학문명의 덕택으로 세계가 더욱 좁아진 오늘날,
청소년 문제는
인류 모두의 심각한 우려 속에서
곪았던 상처가 터진 느낌이다.

이 모든 문제가
인간의 존엄성 상실에서 생겨난
물질문명의 병폐일진대
내일의 희망을 꿈꾸며
걱정 없이 자라나야 할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우리의 실정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젊은이들의 자살은
삶을 고뇌하면서 비롯된 결과라 할지라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의 자살이
대부분 학교 성적을 비관하거나
좋은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임을 생각할 때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체계가
여지없이 무너진 현 사회풍토와
그 바탕이 되는 현대 문명은
호된 비판을 받아 마땅하리라 생각된다.

삶의 목적이
오로지 욕망추구에 있다면
실현하려는 그 목적이 와해되면
생명이 더 이상 존재해야 하는 이유
또한 무가치해져 버린다.

명예. 권력. 물질의 충족 등
정화(淨化)되지 못한 인간의 근본욕망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잘못된 인생관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생의 가치나 목적을 바라보는 시각에
일대 전환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한 예로
언젠가 대학생들이 판문점에서
북한 대학생들과 만남을 갖겠다고
대대적인 움직임을 보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국내 정세가
학생들의 뜻을 전부 수용 할 수도 없거니와
학생들도 보다 학생답고
신중한 태도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여론으로 그 뜻이 관철되지 못했다.

그러나 통일을 향한 학생들의 열망은
타성에 빠진 정치인들을
각성시키는 변수로 작용하였고,
그동안 금기로만 여겨왔던 남북통일 문제를
국민 모두가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남북통일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는 정부대로,
운동권 및 재야는 그들대로 생각과 방법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정부에서는
지금까지 고수해 온 틀에서 벗어나
북한 및 공산권의 자료를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의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새 시대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이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논의를
바람직한 쪽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내부에서 일고 있는
통일논의의 활성화 및 진취적인 자세 변화를
북한에서 얼마나
긍정적으로 수용하느냐는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보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진리를 탐구하여
모든 역사와 체제를 비판하고
현대 과학문명도 비판하여
참다운 인간상을 정립해 나갈 때
비로소 우리가 소원하는 남북통일은 물론
나아가서 세계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정진하여
인류 평화 구현의 선봉장이 되기를 바란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생활이 빠른 속도로 변해 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변화가 완만한 옛날에는
인간의 사고범위와 속도가 느렸다.
그러나 기계문명의 빠른 속도만큼
인간의 가치체계를 빠르게 변화시켰으며
그로 인한 가치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특권계층에만 허용되었던 물질 및 제반 권리가
근대 이후 형성된 민주주의에 의해
대중 모두에게 균등하게 파급되었다는 점은
인류 역사상의 일대 쾌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지구상에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이상으로 하는 국가도 있다.

이 과학문명이라는 놈은
체제의 구별 없이 파급되었다.
여러모로 편리한 이점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문제는 인간 생활을 피폐하게 한다는 점이다.

과학문명은
인간의 지성, 이성을 중요시하는 반면
인간의 심층, 근본 영성(靈性)의 자리,
부처의 마음자리를 외면하게 되었다.

과학이 요구하는 것은,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큰 효과를 기대하는
효율성 추구를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인간의 내면을 밝히는 공부는
많은 시간과 인고(忍苦)의 노력이 필요하다.

불교에서는
중생이 부처가 되려면
삼아승지겁(三阿僧紙劫)동안
한량없는 세월을 정진해야 된다고 말한다.

과학의 원칙에 기준 한다면
오랜 세월 동안 정진해야 하는
마음 닦는 일은 비경제적이므로
과학의 원리와 어긋나게 된다.

그러나
비록 수학적인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지만
인간의 내면세계를
개발한다는 것은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오늘날과 같은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문명의 한가운데에 선 인간은
자칫 주체성을 상실하여
기계문명의 노예로 전락해 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인간의 정신이 자유롭게 살아나서
창조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생명의 역동성은 파괴될 것이 자명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소리의 전파속도보다
더 빠른 초음속 항공기의 조종사는
과학문명 시대의 기계적인 인간을 대표한다.

조종사는
전기로 따뜻하게 유지되는 난방복을 입고
산소가 공급되는 모자를 쓰고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낙하산을 착용한다.

최첨단 과학문명의 산물인
초음속 항공기가 비행할 때
그 항공기의 운항여부는
오로지 조종사에게 달려 있다.
조종사는
대기 이상으로 인한 질식과 동사(冬死),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식을 잠시라도
항공기에서 이탈할 수 없다.

또 조종사의 모든 행동반경은
기체 내에서 이루어지므로
기체 내의 기계작동에
적응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기계에 의해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만 요구될 뿐
인간다운 용기나 정서,
영적 느낌 따위는 소용없게 된다.

인간의 존재가 매우 작아져
최소한의 질량만을 지닌
기계의 일부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인간다운 모든 사고와 능력을
기계에 의해 억압당하는 항공기 조종사를
예로 들었는데
한번 우리의 생활을 들여다보자.

우리는 오늘도
자동차나 지하철을 이용하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전기청소기로 청소를 한다.
전기밥솥에 밥을 짓고
저녁이면 으레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는다.

지극히 일상적인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매 순간
기계에 의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생활에
보다 나은 편리함과 풍족함을 주기 위해서
개발된 것이 기계인데,
기계를 다루기 위해서는
기계의 원리에 우리 자신이 적응되어야 하므로
역설하면
인간이 기계에 지배를 당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량의 동일한 규격품을
쏟아내고 있는 거대한 기계 앞의
왜소한 인간을 떠올린다면
더 큰 논리의 비약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기계의 노예상태에서는
인간의 자발적인 능력이 훌륭하게 발휘될 수 없다.

인간의 본능인 욕망만 남는다면
인간세계는 어떻게 되겠는가.

하루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흉악한 범죄,
국가 간의 전쟁, 부의 불균형 등과 같은
일련의 사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데
오늘날 전 세계는 공감하고 있다.

인간을 더 이상
인간답지 못하게 사주(使嗾)하는 과학문명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고,
인간의 훌륭한 영성(靈性)자리,
부처의 마음자리에서 조화된 이성과 감성으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만이
인류를 구제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동서고금의 철학을 초월하고
모든 종교를 초월하고
불교마저 초월한 인간의 참 모습이야말로
참선법(參禪法)의 교외별전(敎外別傳)이 아닐까.

모든 것을 초월해서
자유자재한 참사람으로 살 때에
또한 영성이
이성적. 감성적으로 조화되어 살때에
우리는 과학문명의 참다운 주인이 될 것이다.

인간의 절대적인 존엄성을
깨달은 그 자리를 존중해서
자비심으로 서로 돕고 봉사하는 마음을
생활로 실천할 때
남북통일은 평화롭게 이룩되고
인류는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인간의 참모습을 밝힌 선법문을 들겠다.



 어떤 외도(外道)가 세존께 물었다.

“말 있음을 묻지 않고
말 없음을 묻지 않습니다.”

세존께서 잠깐 잠자코 계시니
외도가 찬탄하여 이르되,

“대자대비하신 세존께서
저의 어리석은 마음을 열어 주셔서
깨달음에 들게 하셨나이다.”

외도가 떠나간 뒤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음에 들었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세간의 좋은 말[良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느니라.”


설두(雪竇) 스님이 송(頌)하기를

기륜(機輪)이 아직 구르지 아니하나
굴리면 반드시 두 쪽으로 달리네.

명경(明鏡)이 홀연히 대(臺)에 임하니
당장에 곱고 추함을 나누도다.

곱고 추함을 나눔이여,
미혹의 구름이 열리니
자비의 문 어디에 티끌이 일겠는가.

좋은 말이
채찍 그림자 엿보던 일을 생각하니
천리 바람 쫓는 말 불러 돌아오도다.

불러 돌아옴이여!

손가락을 세 번 튕기도다.


내가 여기에 대하여 착어(着語)하겠다.

소년시절에 용과 뱀의 싸움을 결판하고
늙어서는
도리어 아이들과 함께 노래부르도다.

각별히 말하노니
돌 부딪친 불 속에서 승부가 나뉘니
무쇠말[鐵馬]을
거꾸로 타고 수미산에 오르도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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