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52. > 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스승 서옹스님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52.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4-03 12:21 조회1,521회 댓글0건

본문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서옹 큰스님 법문집

[사람]
+++++++++++++++++++++++++++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52.

절을 지어 마쳤습니다


서양에서 중세기는
절대적으로 하느님에게 의존하고
절대적으로 복종한 시기였다.

그리고 성경 속의 문구가
진리와 규범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1662년 영국에서
자연과학학회인 로열소사이어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어왔던 성경을 연구한 결과
모순투성이임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래서 종교로는 인류에 이바지할 수 없으니
과학을 연구 개발해서
인류에게 이바지하자는 취지를 갖고
과학을 보다 적극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이러한 과학연구단체가
유럽에 많이 생겼으며
하느님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의 권리를 찾아서 인간의 주인이 되자는
혁신적인 대전환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인간의 생명 및 모든 생물의 생명을 경시하며
도무지 존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가
모두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을 존중하지 아니하는 과학문명은
대 자연까지 멸망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흘러가고 있는
과학문명 역사의 제반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된 것이
오늘날 세계의 무서운 현실이다.

그러면
그 원인이 어디서 왔는지부터 알아야 하겠다.

현대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교통, 통신 등 생활수단이 편리해졌고
물질적으로도 풍부해졌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명을 빼앗아가던
전염병도 퇴치해서 잘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역사를 창조한다면
결국 인류는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면 과학문명의 발달이
어째서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을까?

무엇보다
과학문명을 뒷받침해 주는 원리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과학문명을 뒷받침해 주는 원리는
데카르트 철학이라고 한다.

데카르트철학은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한다.
이원론에서는
사유하는 정신은 주인과 같고
물질은 하인과 같은 입장이 되어
주인이 하인을 부리듯이
물질은 정신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 결과 육체도
생명체가 아닌 물질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면 정신은 어떠한 것일까?
이원론에 의해
물질인 육체는 죽는다 하더라도
정신은 육체와 별개이므로 죽지 않는다.

나고 죽는 것이 있어야 생명인데
이원론에 의한 데카르트 철학에는
나고 죽음이 없으므로 생명관이 없다.

모든 것을 지배 정복하고
게다가 생명관마저 없으므로
생명이 있는 인간을 존중하는 사상도 없다.

또한 이성적이라든가
오성적이라는 것은 인간에게만 있고,
그밖에 모든 생명에게는
감각은 있을지언정 정신이 없으니까
단순히 물질로 보게 된다.

그러므로
생명체를 죽여도 아무 죄의식이 없다.
이러한 원리바탕에서
비롯된 과학문명을 받아들이다 보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고,
대 자연이 파괴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뒤에 이성철학에 반대하여,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각과 욕망이라는 철학이 생겨났다.

포이어바흐가
“사람은 감정으로 돌아가라,
육체로 돌아가라.
우리의 생명은 감각. 육체. 욕망이 지배한다”
고 주장한 후부터 욕망철학이 나오게 된다.

프로이트는
성욕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주장하고,
또 니체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권력욕이라고 주장하였다.

니체철학을 구현한 사람이
히틀러라고도 하지 않은가.

히틀러는
수십만의 유태인을 학살하고 문화를 탄압했으며,
결국은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스탈린은
마르크스 철학을 구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나?

욕망철학의 바탕에서
욕망이 판을 치는 더욱 위험한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욕망이라든가 이성,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더 깊이 들어가면
좋다. 나쁘다, 참이다. 거짓이다 하는
절대모순에 빠지게 된다.

인간에게는 깊은 심층이 있으며
초월해야 할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실존철학이 나오지 않았는가?

실존철학은
이성과 욕망을 초월한
더 깊은 심층의 지혜에서 사람을 다룬다.

하이데거는
“인간에게는 반드시 죽음이 있다.
죽음을 숙시하라. 직시하라.”
라며
불안의 무(無)에 빠져 죽음을 직시하는
밝은 밤을 역설하였다.

야스퍼스도
이성과 욕망을 초월한 절대의식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불교와 같이 완전히 초월하여
자유자재하게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늘 붙어 있어서
완전히 초월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서양철학이 깊이 들어갔다 하더라도
인간의 본래 참모습을
완전히 투철하게 깨달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불법이야말로
의식도 초월하고
무의식까지 초월해서
본래의 생명체, 본래의 자기 참모습,
걸림 없는 바로 그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동양사상에서
가장 깊다고 할 수 있는 노자, 장자 철학도
분별하는 의식만 초월했을 뿐
무의식까지 초월하지는 못했다.

무의식까지 초월하고
거기에도 머무르지 아니하고
다시 초월하는 것은
세계 역사상 불법밖에 없다.

인간의 참다운 실존에서 자유자재한 것은
불법, 더욱이 선(禪)밖에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오늘날의 복잡한 과학문명 속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러니까 현실에 올바로 참여할 수 없으며,
미래의 훌륭한 역사를 창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자기를
어떻게 해서 살리느냐, 깨닫느냐
이것이 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불법의 의식. 무의식까지 초월한 본래 참모습,
그 자리라야
어디든지 끄달리지 아니하고
자유자재하게 살 수 있다.
그 자리라야
모든 사람이 한 생명체가 되어
생명을 존중하고 싸우지 아니하며,
자비화합의 바탕에서
모든 개체의 대립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기의 참모습 자리에서 보게 되므로
대자연까지 한 생명체로 존중하게 된다.

훌륭한 불국토를,
안락한 세계를 건설하는 원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인간과 대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불법이야말로
우리 인류를 구제할 수 있는,
과학문명을 올바로 창조할 수 있는 진리이다.

우리 민족은
과학문명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불법을 가지고 있다.

불법의 바탕에서 세계사를 창조하여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가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도우며
사람과 대 자연이 잘 조화되어
모든 생물이 번성할 수 있는 세계를 건설하자.
이와 같이 세계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세계 역사적 사명이라고 확신한다.

끝으로
본래의 나의 참모습에서 바로 법문을 하겠다.


 세존(世尊)께서
대중들과 같이 행차하실 때에
한 조각 땅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셨다.

“이 땅에 절을 지을 만하구나.”

제석천왕이 한 줄기 풀을 가지고 와서
땅 위에 꽂고 말하되,

“절을 지어 마쳤습니다.”

하니

세존께서 빙긋 웃으셨다.


천동각(天童覺)스님이 송(頌)하기를

백 가지 풀 위에 끝없는 봄
손으로 마음대로 잡아와서 친숙하네.

장육금신(丈六金身)의 거룩한 공덕을 쌓아
부질없이 손을 끌고 티끌 세상에 들어오네.

티끌 세상에서 능히 주인노릇 하고
바깥 세상 교화하니 손님이 모이도다.

가는 곳마다 살림이 풍족하나니
재주가 남만 못함을 꺼릴 것 없어라.


내가 여기에 대하여 착어(着語)하겠다.

좋구나!
삼각산에 구름 흩어져
허공 중에 천 길이나 우뚝 서 있구나.


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57205 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1239   종무소 - Tel : 061-392-7502 / Fax : 061-392-2081

기도접수처 - Tel : 061-392-0100 / Fax : 061-392-1143   템플스테이 - Tel : 061-392-0434

Copyright © 2020 대한불교조계종 백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