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서옹 큰스님 법문집

[사람]
+++++++++++++++++++++++++++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57.

나의 출가 동기


나는 1912년 10월 10일
충남 논산군 연산면 송정리 495번지에서
부(父) 이범제(李範濟)씨,
모(母) 김지정(金地貞)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나는 .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어른들의
말씀을 따르고 순하게 자랐다.

그래서 이름을
상순(商純)이라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일곱 살 때
아버님을 잃고 어머님과 함께
삼촌 집에서 살면서
조용한 곳에 앉아 깊이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열일곱 살 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또 같은 해에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한꺼번에 몰아닥친 비운으로
어린 나는 하늘과 땅도 보이지 않고 막막했다.
그래도 다행히
숙부님께서 집안을 정리하고
뒤를 보살펴 주었기 때문에
학업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양정 고등보통학교 졸업반이 된 나는
인생 문제와 우주의 진리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제 치하의 굴욕과 울분으로
국가와 사회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때 누구나 느끼던
시대적인 민족감정이기도 했다.

왜 일본은 우리를 괴롭히나?
도대체 인생은 무엇이며, 진리란 무엇인가?

서대문 송월동에 살던 나는
연세대학 뒷산을 배회하면서
인생 문제 때문에 명상에 잠기곤 했다.

한때는 시험 삼아
산 속에서 모기에 물려가면서
사색에 빠져 밤을 새우기도 했다.

과연 인생은
무상(無常)한 것인가, 아닌가?

어느 날 시험공부를 하기 위하여
총독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는데,
불교서적을 읽다가
무아사상(無我思想)이 꼭 마음에 들었다.
오직 불교만이
인생 문제와 사회문제를
해결해 줄 것같이 생각되었던 것이다.

나는 절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다가
각황사(覺皇寺 :지금의 조계사)에 가게 되었다.

그때 마침
중앙포교사로 있던 김대은(金大隱) 스님을 만났다.

초면 인사를 한 다음
중이 될 수 없느냐고 묻자
스님은 대뜸 거절했다.

그때만 해도
고등보통학교 출신이 입산하는 예가 드물었다.
그러나 나는 스님을 계속 찾아다니면서 졸라댔다.

마침내 포교사 스님은
자기보다 훌륭한 스님을 소개한다면서 .그 당시 교무부장이던
송만암(宋曼庵) 스님에게 천거해 주었다.

만암 스님께 출가할 것을 약속하고
중앙불교전문학교(지금의 동국대학교)로
진학하겠다고 숙부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엄한 숙부님은 절대적인 반대를 하고,
담임선생님도 불교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로 진학할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친구들까지도
내 생각을 의심하고 비웃었다.

그때만 해도
불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 출가할 것을 다짐한 결심을 굽히지 않고
숙부님께 허락을 간청하였다.

인생문제를 해결해 주면
당장 출가를 포기하겠다고
다잡아 졸랐던 것이다.

마침내 승낙을 한 숙부님은
단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집안의 장손인 나에게
아들 하나만 낳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출가할 욕심으로 거짓약속을 했었다.

그러다 숙부님은
나의 은사(恩師)를 알고 싶어서
각황사까지 찾아왔다.

숙부님은 만암 스님을 뵙자
그 분의 인품에 압도되어
두말없이 잘 부탁한다고 해서
결국 나는
1932년 백양사로 출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출가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출가후의 수행이 아닌가 생각된다.

처음의 발심(發心)을
굽히거나 바꾸지 않고
초지일관하여 수지(守持)한다는 것은
견실한 정진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출가의 동기,
그 자체보다 출가 후에도
정진력을 잃지 않는 신심이
더 위대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