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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의 향기

유무(有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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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12-31 05:34 조회2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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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有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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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에도
쫓아가지 말고
공함에도 머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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莫逐有緣 勿住空忍
막축유연 물주공인


『신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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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안목으로 볼 때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인가.

현실에 집착하는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아니면 모든 현실을
무상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허무주의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보기 딱한 허무주의자도,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만
모든 가치와 삶의 무게를 싣고 사는
추한 현실주의자도
바람직한 인간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불교는
중도적인 삶을 표방하고 있다.


왕자였을 때 세존은
왕궁에서 갖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휴양처와
미색과 음주와 가무 등등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모두 누렸다.


그러나 그런 생활이
사람으로서 결코
바람직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세존은 출가수행을 단행하였다.

출가한 뒤에는
당시 인도의 출가수행자들이
흔히 하던 모진 고행을 하였다.

세존의 고행상(苦行像)을 보면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하여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이다.


고행을 하던 세존은
문득 크게 느낀 바가 있어서
고행을 멈추었다.

세존은 목욕을 하고 우유죽을 먹고
바른 선정에 들어간 다음
7일 만에 큰 깨달음을 이루었다.

정각을 이룬 다음
세존이 토한 첫 사자후가
바로 중도선언(中道宣言)이었다.

향락에 빠진 추한 현실주의적 삶도,
고행에 빠진 딱한 허무주의적 삶도
바람직한 길이 아니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나병 환자로서
일생을 천대 받으며 살아왔던
삼조 승찬(僧瓚, ?~606) 대사,
그는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보고나서
『신심명』을 통해
다시 중도적인 삶을 살라고 가르치고 있다.

마치 세존의 중도선언과 같은 입장이다.

한 사람은
스스로 향락과 고행이라는
양변의 삶을 경험하여 중도를 터득한 것이고,
한 사람은
모진 병고를 앓으면서 중도를 터득한 것이다.


모든 있음은 거짓으로 있는 것이므로
그 있음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건강한 육신에 즐거워할 것도 없고
병고에 시달리는 육신이라 해서
괴로워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모든 존재는
인연에 의해서 잠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있음은 인연이며
인연은 있음이라는 의미에서 유연이라 했다.


모든 없음은
그냥 막연히 없는 것이 아니라
있음 속에 숨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인(空忍)이라 했다.

마치 고통이 있는 사람이
그 고통을 참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게
고통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참을 인(忍)자를 써서
공을 나타내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와 같이
있으면서도 없기 때문에
없음도 아니고 있음도 아니다.

있고 없음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다 같이 수용하여
걸리거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세존도 승찬 대사도
양변을 동시에 부정하고
동시에 수용하면서 살 것을
우리들에게 권하고 있다.

그것이
“있음도 쫓아가지 말고
공함도 머물지 말라”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있음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있음에 집착하는 것이다.

또한 공을 따르는 것은
오히려 공의 이치를
등지는 결과가 된다고 한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④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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